스킨

마그리트의 강간(츠게님 리퀘)

알파카개틀링 2014. 6. 21. 21:11


 신카이가 새 주전자를 사 왔다. 기존의 주전자보다 작은 크기였다. 새 주전자로 물을 끓이면 좁은 방 한 칸이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주전자를 새로 사 온 이후로 폭력의 강도는 한 층 더 높아졌다. 내가 내지르는 소리보다 주전자의 비명소리가 더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신카이는 내가 부르는 이름보다 물이 끓는 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고, 그만큼 팔을 휘두르는 힘을 제어하지 못 했다. 내 앞니와 어금니는 여러 번 부러졌다. 

 나는 매번 생달걀을 뺨에 문지르며 주전자에 물을 올렸고, 물이 팔팔 끓기 전에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나 혼자 집에 있는 때만이라도 주전자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미적지근한 물 덕분에 약을 넘기기는 편했지만 맨살에 와닿는 약이 얼마나 쓴 지 느끼지 못 하게 되었기에 약을 쉽게 넘겼다는 사실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다. 

 새 주전자 이전에 신카이는 새 쇼파를 사 왔었다. 기존에 배치해두었던 패브릭 소재의 밝은 색 쇼파는 반 년을 채 넘기지 못 하고 핏자국이 잔뜩 배어있었다. 나는 칼로 쇼파의 솜과 커버를 잔뜩 헤집은 뒤 딱지를 붙였다. 그렇게 해야 쇼파를 주워가는 사람이 없다고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심 누군가 이 쇼파를 다시 세탁해서 활용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했지만, 내가 하는 모양새을 지켜보던 신카이가 쇼파의 골격 사이사이를 칼날로 다시 후벼 파대는 것을 보며 그냥 통째로 불에 태우는 것이 차라리 나을 거라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쇼파를 버린 바로 그 날 오후에는 검은 가죽 쇼파가 새로 들어왔다. 딱딱하고 어색했다. 새 가구가 들어오는 게 한 두 번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나는 코피를 흘리거나 이가 부러졌을 때 얼굴을 비비면 그나마 가장 포근했던 패브릭 쇼파를 사랑했다. 그동안 패브릭 쇼파가 내 피를 빨아먹었기에 그렇게 독한 냄새가 났던 거라고, 신카이는 손자국이 거뭇하게 남은 내 목에 멍 연고를 발라주며 이야기했다. 

 쇼파를 떠올리니 길쭉하던 방손잡이가 동그란 모양으로 바뀌었던 일이 생각났다. 문고리를 새로 끼우기 위해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던 신카이의 뒤로 살금살금 걸어갔던 적이 있었다. 별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내가 신카이의 목덜미에 손을 대기도 전에 시야가 먼저 까뒤집어졌다.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과 동시에 신카이는 내 팔뚝에 강제로 드라이버를 박아넣었다. 나는 깁스를 했다.

 오늘 아침, 나는 이 주 만에 안대를 벗을 수 있었다. 거울을 통해 바라본 내 눈은 핏줄이 모두 터져 토끼처럼 새빨갰다. 한 쪽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흰 눈자위가 못내 낯설다. 어떻게든 앞을 보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눈을 깜빡였고, 원근감에 적응하지 못 한 채 욕실 바닥 위로 두 번 넘어졌다. 다치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몇 시간 뒤 더 크게 다칠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베이지 색이었던 커튼은 블라인드로 갈아 끼워졌다. 커튼봉이 부러져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로써 실내의 채광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나는 블라인드로는 목을 맬 수 없다는 사실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시간관념이 희박해져 정확한 날짜는 떠오르지 않지만 커튼봉이 부러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때의 나는 외눈으로 보는 세상이 익숙하지 못 해 하루종일 무언가를 제대로 집지 못 했다. 양치를 하려다 뺨에 치약을 묻히고, 물을 마시려다 머그컵도 한 개 깨뜨렸다. 산산조각이 난 컵조각을 줍다가 손을 베였지만 밴드도 붙이지 못 했다. 나는 블라인드 틈새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보면서 검지손가락을 쪽쪽 빨았고, 신카이가 돌아오기 전에 집을 모두 치워야한다고 새삼 생각했다. 코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했지만 익숙한 냄새였기 때문에 괜찮았다.

 신카이는 오후 늦게 귀가하면서 검은 쇼파에 가만히 앉아있는 나를 보고 가볍게 입맞췄다. 그의 충만감은 주로 폭력으로 이어졌다. 주먹으로 뺨을 세 번, 발로 복부를 다섯 번. 목이 함부로 돌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된 채 얻어맞아서 완충효과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등허리에 끓는 물이 끼얹어지고 난 후에야 나는 바닥에서 일어날 수 있었고, 신카이가 욕실에 들어간 직후 미리 묶어둔 커튼에 목을 맸지만 커튼봉이 부러져 버렸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것말고는 고요한 밤이었다. 다만 기절했다가 일어나보니 유리창 두 개가 모두 깨져있었을 뿐이다. 

 깨진 유리창을 갈아끼우러 방문한 수리기사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태풍이라도 불었나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햇빛 대신 유리조각이 내 집을 비추는 까닭은 태풍이 아니었다.

***

 로드를 타지 못하게 된 후 신카이는 종종 죽을 듯이 울었다. 프로를 지망하는 그의 꿈은 몇 년 전 박살이 났다. 후쿠토미는 신카이의 병실에 들렀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돌아가버렸고, 토도는 눈과 코가 새빨개져 한숨만 푹푹 쉬었다. 마나미와의 연락은 끊긴지 오래였기 때문에 소식을 알릴 수도 없었다. 이즈미다의 병문안은 신카이가 거절했다. 남들 앞에서는 사람 좋은 것처럼 방실방실 웃고 있다가도, 내가 시선을 옮겼다가 고개를 돌리면 신카이는 웃으면서 울고 있기 일쑤였다. 혹여 자살이라도 할까봐 나는 신카이의 곁을 지켰다. 

 후쿠토미는 신카이를 격려했고, 토도는 신카이가 잠든 사이 비상구로 나를 불러 무어라고 조언해주었다. 네 모습을 겹쳐보고 동정하는 건 알겠지만 어쨌든 선은 긋고 대하라는 내용이었다. 네가 감당할 수 없을테니 적당히 하다가 손을 떼라고. 나는 알았다고 이야기했지만 나 또한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수긍하지는 않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토도의 이야기를 마음 깊이 새겨뒀어야 했다. 신카이와 토도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그 때의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무릎이었던가, 정강이였던가. 정확히는 떠오르지 않았다. 척추였던 것 같기도 했다. 신카이는 입원 이후 밤만 되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온 솜이 늘어질 때까지 흐느꼈다. 나는 새벽마다 간호사에게 새 베개를 받아왔고, 종종 신카이가 적신 베갯잎의 냄새를 맡았다. 눈물냄새가 나는 베개는 내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처량하고, 비참하고, 목 뒤로 불덩이가 걸려 넘어가지 않는 것 같았던 추락의 나날. 

 그래서 나는 신카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잘도 잠들었다. 딱히 가족도 아니었던 그의 병수발을 들면서 중학생이었던 시절의 나를 간병했다. 신카이는 꼬박 한 달 동안 제대로 잠들지 못했고, 그 뒤로 천천히 나아지긴 했지만 퇴원할 때까지는 인간이 아니었다. 나도 그도 짐승같은 시간을 되다 만 지옥처럼 어떻게든 견뎌냈을 뿐이었다. 

 신카이가 스스로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된 후, 후쿠토미의 병문안은 뚝 끊겨버렸다. 토도는 가끔씩 찾아와서 인사치레만 하고 돌아갔다. 토도가 매번 눈빛으로 나를 질책했지만 나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그맘때쯤 신카이는 이즈미다의 병문안을 겨우 받아들였다. 이즈미다는 신카이가 퇴원할 때까지 매일같이 병실을 찾아왔다. 그 때부터 하루 한 번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신카이가 이즈미다를 반겼기 때문에 이즈미다에게 신카이를 맡길 수 있었다. 나는 매번 쪽잠에 들었기 때문에 그 둘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 한다. 다만 이즈미다가 떠난 병실의 공기는 사막처럼 뻑뻑했고, 신카이의 눈빛 또한 그러하다는 건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신카이는 모래 알갱이같은 눈을 가지게 되었다. 

 후쿠토미에게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는 사실은 토도로부터 뒤늦게 전해들었다. 그때문에 병문안을 오지 못 한다고 했다. 아마 후쿠토미 본인도 신카이의 병실에 들를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뻔뻔하지 못 한 사람이었다. 

 후쿠토미의 이야기를 들은 신카이는 적정선의 재활치료만을 허용했다. 나는 신카이가 웃으면서 두 번 다시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다가, 점심시간이니 밥이나 먹으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일순 자전거를 증오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눈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신카이가 자전거를 사랑하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가 자전거 자체보다 자전거를 통해 배출해내는 스스로의 폭력성을 더 사랑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몇 달만의 울음은 재활치료를 시작했던 첫날밤에 터졌다. 신카이는 갓 다친 것처럼 베개에 얼굴을 묻고 다시 오열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손목을 깨물며 울음을 참았던 그는 그리도 조용히, 그러나 고요하지 않게 절망하고 있었다. 아마 분했을 것이다. 분한 것만큼이나 죽고 싶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신카이가 나의 이름을 불렀기에 잠들 수 없었다. 

 "야스토모, 깨어있어?" 

 어떻게 해서든 자기 자신을 이겨내고 싶은 신카이의 마음이 말투에서 묻어났다. 섹스하자, 야스토모. 섹스하고 싶어. 나는 신카이의 헐떡이는 숨에서 '제발' 이라는 단어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벼랑 끝에 간당간당하게 서 있는 것이다. 뛰어내리느냐 마느냐의 갈로에 강제로 놓여있는, 그리하여 한 발짝이라도 실수하면 단박에 숨을 거둬버리는 투신자살.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아사한 것 같기도 했고, 익사한 것 같기도 했다. 눈물냄새가 나는 목소리였고, 시체냄새가 나는 목소리였다. 어쨌든 죽어있었다. 죽은 자의 부름같은 이야기였다.

 어둠 속에서도 신카이의 눈이 새빨갛게 물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성욕이나 승부욕으로 달아오른 것이 아니라 그보다도 더 순수한 분노로 젖어있는, 완벽하게 비참한 패배자의 눈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엎어뜨렸던 비앙키를 볼 수 있었다. 팔꿈치가 낫자마자 제일 먼저 부러뜨렸던 야구방망이도 덩달아 떠올랐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면 당장에라도 신카이를 꺾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신카이를 깨끗하게 부러뜨릴 수 있는 것은 이 공간에서 나 혼자 뿐이었다. 나는 그를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권력자였고, 지배자였고, 그의 간병인이었다. 

 그래서 나는 속옷을 벗은 채 신카이의 아랫배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과거의 나 자신을 강간하며, 신카이에게 다시 일어날 것을 요구했다. 

***

 신카이가 퇴원하던 날, 그는 내 집에 처음으로 들어왔다. 신카이는 베란다 벽에 기대어있는 비앙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오랜만에 본다며 웃었다. 말마따나 대학 진학 후 신카이와 나는 맞닥뜨릴 일조차 별로 없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기에 그저 그에게 TV나 보라고 리모콘을 던져줬다. 신카이는 리모콘을 눌러 텔레비전의 전원을 켰고, 볼륨을 최대한으로 높힌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드문드문 끊겨가는 정신 속에서도 시끄러운 토크쇼를 들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넓은 거실에 티비소리만 가득 찼던 것이 선명하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목이 졸렸다. 

 나는 너를 보살핀 게 아니라 과거의 나를 보살폈을 뿐이라고, 그래서 네가 섹스한 건 내가 아니라 네 자신이라고. 기묘한 욕구해소는 종종 드물지 않게 내 집에서 일어났다. 신카이가 나를 두들겨 패며 비참함을 즐기는 동안 나는 신카이를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것으로 서로 대리만족을 얻었다. 내가 비록 신카이에게 목이 졸려 꺽꺽대고 있을지언정, 나는 내 호흡을 팔아 그 값으로 신카이의 정신을 강간할 수 있었다. 쌍방합의였다. 그래서 평화로웠다. 

 깁스를 한 채 목을 매는 것은 쉽지 않다. 꼬박 세 번째 자살시도였지만 그 중 한 번만이 아슬아슬하게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을 뿐이다. 한 쪽 팔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은 살아가는 데에 있어 치명적이었고, 치명적인 만큼 살아가는 시간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다친 것쯤이야 나으면 된다고, 어차피 한 번 나갔던 뼈가 아니냐고. 이제 야구는 하지 않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신카이가 울고 사과하면서 나를 끌어안아줬지만 나는 그저 아프면 뺨을 비빌 패브릭 쇼파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너무나도 슬프게 느껴졌다. 

 그래서 또 목을 매달았다. 그리고 실패했다. 숨은 꺼떡꺼떡 넘어갈 듯 떠나다가 기어이 삼도천을 건너지 못 하고 내 육체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뿌연 시야 속에서도 나를 내려다보는 신카이를 볼 수 있었고, 거친 호흡을 들이마쉬며 기억을 박제하는 그의 모습을 힘에 겨워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남긴 흉터를 노끈자국 따위가 덮어버린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나는 신카이가 누군가의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신카이가 무릎꿇고 앉아 나의 뺨을 쓰다듬는 것을 내치지 않았다. 목이 졸려 죽어가다 다시 살아나는 그 순간에는 신카이가 내게 손찌검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신카이가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붕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혐오한다.

 신카이의 마음 속에는 로드를 타기 시작했던 아주 어릴 적 기억부터 애정을 주며 키웠던 토끼까지 그가 살아왔던 모든 시간이 딱딱하게 굳어 존재했다. 그리하여 그의 사랑은 무의식을 박제하는 사랑이다. 소금처럼, 마치 포르말린같이, 사람을 굶겨죽이고 메말라죽이는 감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카이는 말라 죽고 싶지 않아서 나에게 사랑을 퍼부었다. 다정다감하게 선지같이 끈적거리는 자신의 폭력성을 나에게 대신 쏟아내면서,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합리성을 부여한다. 그것으로 나와 그의 시간이 신카이의 좁은 가슴 속에 영원히 박제되어 하나도 빠짐없이 남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라면 사랑이고 연민이라면 연민인 관계. 어쨌거나 신카이에게 중요한 것은 박제하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에 감정의 순수성과 성질같은 것은 아무려면 상관없었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신카이를 사랑하지 않는다.

 어느덧 내 목의 상처는 붉게 일어나 있었다. 신카이는 내 흉터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물은 일종의 정화의식이다. 신카이는 울면서 비로소 스스로를 사랑할 준비를 끝마친다. 나는 스스로를 체벌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신카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 내가 빨리 죽었으면 하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