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이르쿠츠크는 봄이 되면 봄 냄새가 났다. 여름에는 여름 냄새가, 겨울에는 눈 냄새가. 이사카는 날씨에 솔직한 도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매년 시간이 지나간 흔적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가는 냄새에는 여러 냄새가 섞여있다. 산 사람의 냄새와 죽은 사람의 냄새가 한데 섞여있는 화장터의 냄새. 죽은 동물과 산 동물이 얽혀 살아가는 숲의 냄새. 불꽃같이 지나간 여름의 냄새와 휘파람처럼 다가오는 겨울의 냄새가 이르쿠츠크에 머물러 있다.
인생도 그와 다를 바가 없다. 이사카는 그렇게 살아왔다. 이사카가 태어난 날은 육신의 죽음과 시간의 죽음이 한데 뒤섞이는 날이었다. 야생동물들은 이사카가 울음을 터뜨리자 모두 그를 반겼고, 그를 반김과 동시에 같은 날 죽어나간 동료들을 애도했다. 모든 짐승이 이사카의 탄생을 반기며, 이전 세대의 죽어가기 시작하는 시간을 안타깝게 배웅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카는 어머니와 동생을 피해 맨발로 집을 뛰쳐나오는 날이 많았다. 코 끝을 찡하게 울리는 추위보다도 집 안에 가득한 모성의 냄새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찬 바람에 굴하지 않고 숲길을 걷다보면, 이사카는 이내 그 지역 일대를 돌아다니는 늑대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우두머리 늑대가 늑대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 이사카에게 인사를 하거든, 이사카는 늑대들에게 속삭였다. 등에 태워줄래? 해치지 않을게. 우두머리는 고개를 숙였다.
이사카가 늑대의 등에 올라탄 것은 두 살 적이었다. 이제 겨우 아장아장 걸음마를 걸을 때에, 이사카는 늑대들에게서 삶에 대한 기갈을 느꼈다. 너무도 정돈된 본능과 그들에게 지나치게 방종한 산. 이사카는 우두머리 늑대의 등에 올라탄 채 발가락에 스치는 풀잎을 느끼며, 자신이 태어난 바로 다음 날에 집 앞에 쌓여있던 가죽없는 청설모들의 시체를 생각했다.
이르쿠츠크는 눈이 오면 눈 냄새가 나는 도시였다. 그리고 이르쿠츠크 주위에 붙어있는 땅딸만한 이사카의 집은 이르쿠츠크보다도 눈 냄새가 진했다. 이사카는 걸음마를 걷는 날보다도 늑대의 등에 올라타는 날이 더 많았다. 우두머리 늑대가 사냥감을 찾으러 떠난 날엔 이사카는 늑대 대신 여우를 불렀다. 여우의 등에 올라탈 수 없으면 겨울잠을 자는 곰들의 잠을 깨웠고, 곰들이 일어나지 않는 깊은 겨울엔 저 멀리 떠나있는 순록떼를 불렀다. 이사카는 여우들이 물어온 빵을 먹으며, 곰들이 얼음을 깨고 잡아온 생선을 나뭇가지에 꽂으며, 순록의 뿔에 뺨을 비비며, 문득 깨닫게 된 것이다. 이리도 친절한 자연에게, 이리도 서투른 짐승들에게 주어진 것이 진짜 생이라고. 너무도 자유로워 방종하기까지 한, 아, 자유. 자신은 영원히 가질 수 없을.
그래서 서현은 가끔 이사카의 꿈을 꿨다.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지듯 잠에 들면, 암컷늑대가 이사카의 티셔츠를 물고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사카는 늑대의 등을 타고 롯시니에게 줄 나뭇잎들을 꺾어보다가, 나무를 타고 있는 날다람쥐의 아몬드를 뺏었다. 그리고 새끼늑대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날다람쥐의 뒷발을 같이 낚아챘다.
늑대도 어미는 새끼를 챙겼다. 우두머리 대신 이사카를 태워주던 암컷늑대는 자신의 새끼들에게 젖을 먹였다. 이사카는 그런 암컷 늑대에게 자신이 들고 온 날다람쥐를 먹여주었다. 삶이란 시간과 죽음이 한데 뒤섞여 있는 것. 이사카는 가공된 것이 분명한 달달한 아몬드를 손에 쥔 채, 암컷늑대가 코끝으로 밀어준 날다람쥐의 허벅지살을 뜯어 먹었다.
배가 부른 이사카는 늑대새끼들 사이로 파고 들었다. 이제 갓 젖을 뗄까 말까 한 새끼들이 젖묻은 주둥이를 이사카의 티셔츠에 비벼댔다. 새끼들에게서 젖비린내가 났다. 이사카는 롯시니를 생각한다. 롯시니는 아직도 어머니의 젖을 떼지 못 하고 있었다.
이사카는 새끼늑대들을 품에 안았다. 오늘 밤은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룻밤만 재워줘. 그러자 암컷늑대가 이사카를 품었다. 이사카가 새끼늑대를 품고, 어미늑대가 이사카를 품는 침엽수림의 밤. 새끼늑대처럼 암컷늑대의 품 안에 파묻혀 잠이 든 그 날 밤, 이사카는 그 암컷늑대에게 릴리쓰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아, 삶. 삶이란 시간과 죽음이 한데 뒤섞여 있는 것. 서현은 잠에서 깨어났다. 불똥이 튀는 것처럼 순간 뜨겁고 깨어진 얼음처럼 오싹한 기상이다. 트기 시작한 동이 빛처럼 선연했다.
"……."
"뭐야, 또."
"아니, 어린 시절 꿈을 꿔서."
세건의 비웃음이 픽 들려왔다. 잠이 덜 깨어도 세건의 냉소적인 기질은 무뎌지지 않는다. 서현은 목까지 올라와있는 이불을 조금 내렸다. 한국은 지나치게 습하고, 조금 덥다.
대도시는 방탕하거나, 더럽거나, 혹은 역겨운 눈물냄새가 날 줄 알았다. 그러나 서울은 그렇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지나가는 당연한 냄새를 사람이 살아가는 냄새로 덮어씌웠을 뿐이다. 조금 갑갑하고, 앞이 깜깜한. 이르쿠츠크와 침엽수림과는 확연히 다른 냄새. 그러나 이런 냄새도 삶의 냄새였다. 이런 것도 인생이고, 이런 것도 시간이다. 언젠가 곧 지나가고 말, 누군가의 탄생 위로 내 죽음을 겹쳐 온점을 찍어줄. 서현의 거친 숨이 수그러들었다. 서현의 얼굴로 세건의 손이 올라온다.
"귀찮게 하지 말고 자라."
서현은 마음 속 눈을 깜빡이며 생각했다. 너도 어린 시절이 있었겠지? 너무나도 당연한 삶을 살았을, 마치 내게 동화처럼 느껴지는 그런 평범하고 자유로운 삶. 마침내 서현은 눈 속의 눈까지 깊게 감았다. 눈꺼풀 위로 내려앉는 세건의 손바닥이 동굴처럼 어두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