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겨울
목요일에만 문을 여는 꽃집이 하나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이 들락날락할 법한 번화가에 위치하면서도, 그 꽃집은 일주일에 딱 한 번 있는 목요일 늦은 점심에 문을 열곤 했다.
지금은 문을 닫은 그 꽃집을 왜 이제와서 언급하느냐 하면은, 어느 날 한 번은 점심을 먹고 들어가는 길에 그 꽃집에 들렀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득 새빨간 장미가 생각나던 목요일에, 곧 다가올 태풍 때문에 공기에 습기가 가득 차서는, 다른 온 동네 꽃집들이 일제히 문을 틀어막고 에어컨만 돌리던 삭막한 시기에, 유일하게 그 꽃집만 가게 밖에 장미를 진열해두었던 터였다.
깨끗한 외관값을 하는 것처럼 그 집에서는 싯가의 다섯 배는 될 법한 비싼 가격으로 꽃을 팔고 있었는데, 나는 썩 싱싱하다고 하기엔 어려운 꽃들을 살펴보며 투덜거리다가 살짝 시들은 수국 다발 하나를 사 들고 나왔었다. 그렇게 예쁘지도 않은 포장지에 시들시들해서는 모가지도 훼까닥 꺾이려 드는 수국 몇 송이를 달랑 모아 묶은 부케였지만 그래도 오후 내내 살아있기는 했었다.
그래서였는지 바로 다음날, 시든 꽃들을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던 그 순간, 쓰레기로 전락한 꽃송이에 대한 아쉬움과 가련함이 그렇게도 지독하게 와닿았던 것 같다. 내가 이 별 것 아닌 행위를 아직도 떠올릴 수 있는 까닭은 아마 그 꽃집의 주인이 리본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꽃집엔 앳된 얼굴의 절름발이가 살고 있었다. 나는 그 꽃집을 좋아했다.
나는 이후로도 몇 번을 더 그 꽃집에 들렀다. 일부러 목요일 점심은 직장 동료들과 함께 외식을 했다. 근처 백반집에서 식사를 때우고 커피를 하나 테이크아웃하고 나면 절름발이의 꽃집이 막 오픈하기 시작하곤 했다. 나는 회사로 돌아가는 척하며 슬그머니 다시 빠져나와 그 꽃집에 들러, 장미꽃 한 송이라도 사곤 했다. 새까만 머리카락에 창백한 얼굴을 한 절름발이는 매주 찾아오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는지 기어이 불편한 다리를 한 채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리본끈을 꺼내 끊었다. 그리고 장미꽃 줄기 끄트머리에 장미꽃 색깔과 같은 빛깔의 리본을 매어주고는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했다.
그 절름발이는 남자였다. 요즘 시기에 꽃집을 하는 남자가 그렇게 드물겠냐마는, 이런 번화가에 꽃집을 차릴 정도로 돈을 모았다고 하기에 그 절름발이는 너무 젊었다.
그가 젊은지 어린지는 뺨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어딘가 무척 아픈 것인지 혹은 아팠던 것인지, 지나치게 창백한 낯을 한 절름발이의 뺨은 그의 새까만 눈동자와는 다르게 솜털이 빼곡하게 차 올라 있었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뺨에, 순해보이는 얼굴을 하고서, 가끔 그는 노인이 가라앉아있는 듯한 깊은 눈으로 항상 가게 앞에 앉아있곤 하였다. 절름발이는, 젊다고 하기에도 민망할만큼 너무 어린 남자였다.
나는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그 꽃집에 들르기 전까지 모든 생은 아주 가끔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하다는 말을 믿으며 살아가곤 했다. 그래서 다니던 회사에서 잘렸던 날, 정말 너무나도 죽고 싶어서 번개탄이라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갈까 싶었던 날, 처음으로 꽃집에 저녁 늦게까지 불이 켜져있는 것을 보고 충동적으로 그 곳에 들렀다.
"애인 있어요?"
해고당했다는 충격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날 꽃집 안에서 꽃을 구경하는 데만 두 시간 가량을 보냈다. 꽃집이라기보다 꽃 도매상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양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방치된 꽃들의 몰골에 놀란 것도 잠시, 나는 다 말라비틀어진 장미덩어리 사이를 겨우 겨우 오가며 꽃들의 시체 속에 손을 넣고 마음에 드는 꽃을 하나 고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추적추적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 창문에는 성에가 끼었고, 절름발이는 빗소리가 들리는 창문 바로 앞에 앉아 노란 전구에 의지해서 헬리캠을 조립하고 있었다.
유독 눅눅했던 저녁이었다. 비가 와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고, 내가 굉장히 우울하고 괴로웠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사실 일부러 건조시켰다고 해도 믿을만큼 완벽하게 죽어있는 꽃들을 판답시고 진열을 해놓은 꼬락서니를 보니 이 꽃집의 주인도 사실 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거라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외롭고 슬펐던 그 때의 나는 우습게도 죽은 꽃이나마 이렇게 무더기로 직접 볼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꽃향기가 나지 않는 꽃집 안에서 나는, 절름발이가 헬리캠을 조립하는 소리와 하늘이 진득하게 쏟아내는 빗소리를 들으며 무심코 털어놓았다.
저 회사 잘렸거든요. 오늘 정말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여기 왔는데, 말동무라도 좀 해주세요. 애인 있어요?
정신이 잠깐 나갔던 거였다고 말을 꺼내자마자 후회했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절름발이는 새까맣게 뚜껑이 올라온 염색머리를 내게 보이며 대답했다.
"네. 있어요."
"어떤 사람이에요?"
드라이버를 들고 날개를 조립하던 절름발이가 무심하게 설명했다.
"꽃집 차려준 사람."
"아, 사장님을 되게 좋아하시나보네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끼릭끼릭. 나사에 드라이버를 집어넣고 돌려대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마침내 끄트머리가 갈색으로 죽어있는 리시안셔스 한 송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장미꽃만 무더기로 보여서 몰랐는데 이런 꽃도 섞여있었구나. 나 이 꽃 좋아하는데. 내가 꽃 하나를 길게 뽑아내고 카운터에 다가가자 절름발이는 대답했다.
"발목 값인데요."
어디 가서 죽지 말라고 준 거에요 이 가게. 두 달마다 와서 발목 부러뜨리려고. 이천 원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자신의 불행조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놓은 절름발이는, 갈변이 온 노란 리시안셔스에는 아무런 리본도 달아주지 않은 채 자신이 놓았던 헬리캠을 다시 집어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꽃집에 들르기 전까지 모든 생은 아주 가끔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하다는 말을 믿으며 살아가곤 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사실 꽃집 주인의 불행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거나, 진실된 태도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고통과 불행을 떠들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고, 그만큼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받아들이는 것을 낯설어하는 사람이었다. 때마침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그 쪽 길을 걸을 일이 없어서, 한동안은 꽃집에 들르지 못 했다. 들르지 못 했다기보다 들르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겠다. 내 생활은 말라비틀어진 꽃에서나마 위안을 찾고 싶을 정도로 각박하지 않았고, 각박하지 않았다기보다는 각박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 할 만큼 가물어있었다. 꽃집 주인의 장애나, 꽃집 주인이 가진 불행의 단편도 떠올리지 않았다.
나는 한 달 뒤, 그 전에 다니던 회사와 두 블록 정도 떨어진 다른 곳에 비정규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새 회사로 첫 출근을 하는 날 나는 여전히 클로즈 팻말이 걸려있는, 세련된 외양의 절름발이 꽃집 앞을 지나갈 수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곳에 앉아 꽃을 팔고 있었는지 역시나 다 말라비틀어진 장미꽃 진열대와 그 옆에 먼지가 닦인 채 놓여있는 하얀 나무의자가 보였다. 그러고보니 꽃집 주인이 절름발이였던 것 같았는데, 애인이 꽃집을 차려줬다고 했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꽃집 앞을 지나친 나는 반 년 가량 꽃집에 대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계약 갱신을 두 달 앞뒀던 날이었던가. 초여름이었던 것 같다. 초여름인데도 너무너무 뜨거워서 한밤에 아지랑이가 피어날 듯한 날이었다.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라 시야가 어질어질하고, 밤하늘이 녹아내려 별도 달도 안 보이는 것만 같은 초여름 밤에, 나는 또 다시 절름발이의 꽃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늦은 밤이었으나 여전히 도시의 불은 환했고, 그 꽃집 앞을 지나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 초여름 저녁, 드물게 꽃집 안의 노란 전구불은 켜져 있었으나 여전히 문은 잠겨 있었다. 클로즈 팻말이 걸려 있는 데도 꽃집 안에서는 묵직한 무엇인가가 인정사정없이 딱딱한 것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듣고 지나친다면 근처에 있는 통신사 대리점에서 크게 틀어놓은 음악소리로 착각할 만도 할 소리였으나, 아. 나는 순간 등골에 오싹 소름이 돋아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쾅, 쾅, 쾅. 마늘을 다지는 것처럼 규칙적이었지만 마늘이나 깨 같은 것을 빻는다기에는 조금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소리. 그리고 그렇게 살짝 단단한 것을, 통돼지고기를 내리치는 것만 같은 소리 사이사이에는 사람이 앓는 듯한 신음소리가,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간간히 터져나오는 것만도 같았다. 그러고보니 꽃집 주인이 절름발이였던 것 같았는데, 애인이 꽃집을 차려줬다고 했던가. 그러고보니 꽃집이, 발목 값이라고 했었나.
나는 조심스럽게 꽃집으로 다가갔다. 꽃집 앞에 놓여있는 하얀 나무의자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이고는, 꽃집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곧 이어지는 쾅, 쾅, 쾅. 아악. 비명소리가 절름발이의 것이라는 것을 눈치챈 나는 출입문에 나 있는 자그마한 창을 통해 안을 훔쳐보았다. 노란 전구불이 깜빡이는 꽃집 안에는, 아직 초록물이 드문드문 남아있는 머리카락을 한 꽃집 주인이, 어느 남자에게 끌어안긴 채, 그 남자의 목덜미에 매달려서, 오른 발목에 망치질을 당하고 있었다.
"세건."
"한세건."
"대답 안 하나?"
쾅, 쾅, 쾅, 윽, 으윽, 으윽.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는, 확실히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맞긴 맞았다. 다만 제련되고 있는 것이 사람의 발목이라는 점에서, 그것도 이미 걷는 것이 힘이 들어 절룩거리는 사람의 것이라는 점에서 나는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검은 머리를 말끔하게 뒤로 묶어넘긴 남자는 세건의 이마에 연신 입맞추며, 그러나 용서없이, 세건의 발목을 끊임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쾅, 쾅, 쾅. 윽, 흐윽, 흐윽. 남자는 그 뒤로도 수십 번 정도 세건의 발목에 망치질을 했다. 내가 처음 보기 시작한 때만 해도 다소 온건한 모양새로 살갗이 까져 피가 흐르는 정도였던 세건의 발목은 이제 더이상 신체라고 하기 힘든 모양새로 으깨지고 뭉개진 상태였다. 마치 지점토를 떼었다 붙인 것처럼 세건의 오른 다리에서 발목만 움푹 으깨져 있었다.
세건을 끌어 안고 있던 남자는 망치를 놓고 축 늘어진 세건을 양 손으로 추슬렀다. 그리고 땀으로 범벅이 된 세건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한세건, 세건아. 하고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세건아."
"죽여줄까."
"죽고 싶으면 죽고 싶다고 나한테 꼭 얘기해."
나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남자에게 먼저 입맞추는 절름발이를, 그의 새까맣고 동글동글한 아직 앳된 머리꼭지를 바라보다가 황급히 그 자리를 도망치듯 떠나왔다.
나는 그 뒤로 그 꽃집 앞으로 다니지 않았다. 부득이한 일이 있으면 그런 꽃집 같은 것이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되도록이면 빠른 걸음으로 황급히, 꽁무니에 불이라도 붙은 사람처럼 뛰어 지나가곤 했다. 그러나 아주 가끔, 이젠 목요일이 아닌 날에도 밖에 나와 앉아 있는지 두툼하고 하얀 가디건을 걸친 절름발이와 눈을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그의 불행같은 것, 그에게 쏟아지는 주기적인 폭력 따위는 주워 들은 적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는 양 매섭게 고개를 돌리고 그를 모르는 척 했다.
따지자면 나는 그의 불행조각을 우연히 줍게 되었지만, 그것을 주머니에 넣지도, 그렇다고 손에 쥐고 있지도 않은 채 그저 줍게 되자마자 그 자리에서 내던져버린 것에 가깝다. 나는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고, 나는 그 꽃집에 들르기 전까지 모든 생은 아주 가끔 끔찍하고, 아주 자주 평범하다는 말을 믿으며 살아가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한동안 찾아가지 않고 나서야 나를 알아보는 듯 했던 세건의 표정 같은 것을, 나는 더이상 알 수 없게 되었다. 한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결국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었을 때,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녁 뉴스에 커다랗게 서울특별시 G구에서 다리가 몹시 훼손된 20대 남성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속보가 난 것을 보고 났을 때, 아, 이제 꽃집이 사라지겠구나 싶었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가끔씩 초록색으로 염색한 머리가 드문드문 나 있던 꽃집주인을 생각한다. 그가 오른 다리를 절뚝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리본끈을 끊고는, 내가 산 붉은 장미꽃 두 송이의 끄트머리에 각이 뾰족하게 잡힌 리본을 묶어주는 장면이 아직도 떠오른다. 하얀 나무의자에 앉아, 가게 안쪽에서 붉은 리본끈을 끊어 팔랑팔랑 들고 와서는, 새빨간 장미꽃 줄기 끄트머리에 끈을 둘둘 말아 리본을 매주곤 무심한 얼굴로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하던, 눈 속에 체념을 가라앉혔던 어린 남자.
사실 요즘도 그 남자가 절름발이에게 망치질을 하는 모습이 꿈에 나온다. 발목값으로 가게를 받았다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던 꽃집 주인은 나의 꿈 속에서 오른다리를 질질 끌며, 바닥에 온갖 살점과 뼛조각을 문질러대며, 죽고 싶을 때 죽여달라 이야기하겠다고, 그러겠노라고 대답하며 자신의 대장장이에게 입을 맞췄다.
사실 걔는, 꽃집이랑은 안 어울리는 남자였어.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그 남자애랑 꽃집은, 그냥 딱 봐도 좀 그랬어. 안 어울렸어.
나는 눈을 감았다. 그 꽃집엔 앳된 얼굴의 절름발이가 살고 있었지만, 그러나 사실 그 꽃집엔 산 채로 망치질을 당하는 절름발이가 살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 꽃집을 제법 좋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