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수밀다&베로니카 샘플
※ 16P 중 2P 내용입니다
우리 반엔 이상한 애가 있다.
이상한 애라기보단 조금 묘한 애였다. 항상 웃고 다니고, 키가 조금 크고, 입에 무언가를 물지 않는 날이 없는 애였다. 좋게 말하면 섹시하게 생기고 나쁘게 말하면 걸레같이 생긴 애. 잘 웃고 싹싹하게 구는데도 그 애의 소문은 항상 지저분했다. 돈을 받고 데이트를 해준다더라, 그렇게 번 돈으로 자전거를 샀다더라, 쟤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육십만 엔이라더라. 그 애의 소문만큼이나 이상한 것은 그 애의 성격이었다. 그렇게 더러운 소문이 뒤로 돌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본인도 알고 있었을 텐데, 그 애는 단 한 마디 특별한 해명도 없이 그저 웃고 인사하고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조금 놀랐다. 그 애는 성적인 소문으로부터 무관심해보였다. 무관심이라기보단 속물적인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워보였다. 그리고 세속적인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로움과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애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기에 나는 1학기 중순, 그 애의 이름이 교내방송을 통해 온 학교에 울려 퍼졌을 때에야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신카이 하야코, 신카이 하야코. 3학년 교무실 담당 선생님에게 와 주세요, 3학년 교무실 담당 선생님에게 와 주세요.
모두가 그 방송을 똑똑히 들었지만 그 애를 소리내어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초조한 침묵을 버티느니 대신 본관 2층 화장실로 향하는 것을 택했다. 화장실에 홀로 서 있는 그 애는 목욕하는 것처럼 세면대에 손을 담그고 있었다.
거울을 통해 마주한 그 애의 눈동자는 감흥도 없이 홀로 멀뚱멀뚱했다. 그 애는 고개를 들지도, 수도꼭지를 돌리지도 않고 시선만 올려 내 얼굴을 향했다. 담임선생님이 너 내려오래. 나는 세면대 소리에 묻히지 않기 위해 나의 목소리에 온 힘을 담았지만 내 목소리는 무척이나 격앙되어 오한이 든 것처럼 떨리기만 했다. 담임선생님이? 응. 담임선생님이. 내 말을 가만히 끝까지 들은 후 그 애는 고맙다고 인사한 후 화장실을 나섰다.
나는 그 날 내내 비어있는 옆 자리를 때때로 확인했다. 교실 뒷문에 귀를 기울이며 혹시 그 애의 실내화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집중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업이 모두 끝날 때까지 그 애는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그 애와 마주치지 못 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다.
2014-03-03 월, 구름 많음.
새 일기장을 샀다. 어차피 잘 쓰지도 않을 일기장인데 왜 굳이 새로 사야 하는지. 게다가 나는 초등학생 이후로 일기는 단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생 때도 일기를 안 써서 선생님한테 혼났었단 말이야. 어쨌거나 네가 하도 성화를 부려서 결국 아무거나 하나 샀으니까 나머진 네가 알아서 해. 어차피 너도 아무렇게나 쓸 거지? 그러니까 나도 그냥 일기 아무렇게나 쓸래 바보야.
문방구에서 가서 공책 하나 아무거나 달라고 했더니 아줌마가 어디에 쓸 거냐고 물어보더라. 거기다 대고 친구랑 같이 일기장 쓸 때 쓸 거라고 말할 수 있겠냐고 바보야. 내 나이가 몇인데 친구랑 같이 일기장을 써 일기장을 쓰긴. 나는 글씨 쓰는 것도 귀찮고 일기 쓰는 것도 귀찮아. 난 그냥 필기하는 거 자체가 싫다고. 근데 하나하나 사정 말하기도 그래서, 그냥 필기하는데 쓸 거라고 했더니 아줌마가 이거 줬어. 아 진짜 다시 생각해보니까 좀 짜증난다 왜 하필 아무거나 꺼내줘도 이런 걸 꺼내주는지.
나 이거 마음에 안 드는데 굳이 꼭 이런 걸 해야 돼? 게다가 이게 뭐야.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걸 들고 다녀야 하는데? 차라리 줄 없는 걸로 살 걸. 문방구 아줌마 잘 나오지도 않는 볼펜 제 값 받고 팔 때부터 내가 알아봤어. 근처에 문구점 거기밖에 없다고 지금 장사도 대충하는 거잖아. 아무리 싸다고 해도 그렇지 무슨 공책을 이런 걸로 다 아, 몰라. 이거 줄 너무 많아. 쓰기도 귀찮고. 쓰기 싫다 쓰기 싫다 쓰기 싫다 쓰기 싫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유치한 일을 해야 되냐? 진짜 기분 별로야.
나는 오늘부터 일기를 쓸 것입니다. 그런데 쓰기 너무 싫습니다. 하야코한테 이걸 보여주고 검사받아야 하는 것도 싫습니다. 그런데 내가 안 보여주면 울 거잖아. 너 네 마음에 안 든다고 울어버리는 거 그만 좀 해 너 우는 거 보기 짜증나. 아 이제 또 뭐라고 쓰지. 첫 장은 꽉 채우라고 네가 그랬으니까 꽉 채우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딱히 쓸 게 없네. 요즘 춥던데 너 조끼 입고 다녀라. 조끼 안 예쁘다고 맨날 셔츠만 입고 다니다가 감기 걸리지 말고. 너 감기 걸리면 너만 아픈 게 아니라 니네 방 애들한테도 민폐고 나한테도 민폐야. 땀 흘리면 제때 옷 갈아입고 손도 씻고 이제 또 뭐 쓰지? 여기에 뭐 더 써야 하지? 모르겠다 그냥 여기까지만 써야지 끝.
2014-03-04 화, 맑음.
야스토모 오늘 하늘 봤어? 되게 맑더라. 완전 새파래, 진짜 봄인가봐. 그리고 야스토모 쓸 말 없으면 그렇게 굳이 억지로 꽉꽉 채워서 쓰지 않아도 돼 왜냐면 내가 야스토모 몫까지 쓰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한 장 꽉 채운다고 괜히 빼곡하게 억지로 늘리지도 말구. 그런 거 나 섭섭해.
근데 나 받자마자 깜짝 놀랬다? 이거 표지를 딱 보니까 진짜 예뻐서. 막 야스토모 안 같구 그래. (이런 말 하면 나한테 화 낼 거야?) 내가 먼저 사서 줬으면 야스토모 잊어버리거나 이런 거 하기 싫다구 그냥 잊어버렸을 거니까 속는 셈치고 부탁한 건데 야스토모가 진짜 사와서 나 진짜 깜짝 놀랐어. 게다가 나 이 공책 옛날부터 갖고 싶어 했던 건데 어떻게 알았어? 야스토모 가끔 보면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되게 신기해.
그리고 이렇게 서로 같이 일기 써서 번갈아 보여주는 거 우리반 애가 얘기하는 거 들은 건데 친한 친구끼리는 부끄러워도 이런 거 해보는 거래. 처음엔 부끄러운데 나중가면 더 친해진다 그러더라. 얘기 들으면서 야스토모랑 나랑 둘이서 일기 쓸 거 생각하니까 두근거려서 꼭 해보고 싶었어. 나 지금 글씨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펜으로 쓴 거다? 야스토모도 예쁘다고 했던 그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볼펜이 그건데 잉크 별로 안 남아서 아끼고 있었거든. 그래도 야스토모가 맨 처음으로 보게 되는 일기니까 일부러 그 펜으로 쓰고 있어. 지금도 되게 간당간당해서 나올랑 말랑 하고 있는데 억지로 쓰고 있어. 진짜 이거 버려야 할 때 다 됐나봐 되게 좋아했는데.
야스토모 오늘 개학날인데 하필 첫 당번이었다며? 야스토모 교실에서 못 나오는 동안에 오늘 나 혼자 거기 갔다 왔어. 야스토모 없이 나 혼자 가니까 누가 나 때릴 거 같아서 오래 못 있겠더라. 하늘은 무지 파란데 거기는 되게 어두컴컴하고 눅눅하고 그래서 그냥 주변만 좀 돌아보기만 하다가 방으로 돌아왔어. 구관이 확실히 조용하긴 조용하더라. 사람도 별로 없고. 근데 사람이 없는 대신 막 귀신이나 아니면 다른 누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나 때릴 거 같은 느낌이었어. 그래서 그게 조금 무서웠는데 그거만 빼면 거기 되게 좋아. 어두운 거만 아니면 건물에 담쟁이 자라는 것도 되게 예쁜데, 우리 앞으로 점심시간에 거기서 만나자. 그리고 야스토모 날짜 잊어버릴 거 같으니까 날짜는 내가 맨날맨날 대신 써줄게. 그러니까 빼먹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