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수밀다 백업

 우리 반엔 이상한 애가 있다. 
 이상한 애라기보단 조금 묘한 애였다. 항상 웃고 다니고, 키가 조금 크고, 입에 무언가를 물지 않는 날이 없는 애였다. 좋게 말하면 섹시하게 생기고 나쁘게 말하면 걸레같이 생긴 애. 잘 웃고 싹싹하게 구는데도 그 애의 소문은 항상 지저분했다. 돈을 받고 데이트를 해준다더라, 그렇게 번 돈으로 자전거를 샀다더라, 쟤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육십만 엔이라더라. 그 애의 소문만큼이나 이상한 것은 그 애의 성격이었다. 그렇게 더러운 소문이 뒤로 돌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본인도 알고 있었을 텐데, 그 애는 단 한 마디 특별한 해명도 없이 그저 웃고 인사하고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조금 놀랐다. 그 애는 성적인 소문으로부터 무관심해보였다. 무관심이라기보단 속물적인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워보였다. 그리고 세속적인 모든 것에 대해 자유로움과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애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기에 나는 1학기 중순, 그 애의 이름이 교내방송을 통해 온 학교에 울려 퍼졌을 때에야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A, A. 3학년 교무실 담당 선생님에게 와 주세요, 3학년 교무실 담당 선생님에게 와 주세요. 
 모두가 그 방송을 똑똑히 들었지만 그 애를 소리내어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초조한 침묵을 버티느니 대신 본관 2층 화장실로 향하는 것을 택했다. 화장실에 홀로 서 있는 그 애는 목욕하는 것처럼 세면대에 손을 담그고 있었다. 
 거울을 통해 마주한 그 애의 눈동자는 감흥도 없이 홀로 멀뚱멀뚱했다. 그 애는 고개를 들지도, 수도꼭지를 돌리지도 않고 시선만 올려 내 얼굴을 향했다. 담임선생님이 너 내려오래. 나는 세면대 소리에 묻히지 않기 위해 나의 목소리에 온 힘을 담았지만 내 목소리는 무척이나 격앙되어 오한이 든 것처럼 떨리기만 했다. 담임선생님이? 응. 담임선생님이. 내 말을 가만히 끝까지 들은 다음 그 애는 고맙다고 인사하며 화장실을 나섰다. 
 나는 그 날 내내 비어있는 옆 자리를 때때로 확인했다. 교실 뒷문에 귀를 기울이며 혹시 그 애의 실내화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집중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업이 모두 끝날 때까지 그 애는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그 애와 마주치지 못 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났다.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다시 본 그 애는 싸늘한 인상의 어느 여자애와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사나운 얼굴의 그 여자애가 A, A 어디 있냐? 하며 우리 반에 들이닥치는 일이 많아졌다. A는 화장실 갔어. 어느 샌가 그 애의 메신저 역할을 떠맡게 된 내가 더듬더듬 어설프게 겨우 대답하면, 무서운 여자애는 나를 천천히 뜯어보다가 알았다고 대답한 뒤 자리를 떴다. 사납게 생긴 여자애의 이름이 B B라는 것은 한참 후에야 뒤늦게 알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부를 일이 없었다.
 2학기에 들어서 B의 반과 우리 반은 일주일에 두 번 함께 체육을 하게 되는 날이 있었다. A는 체육시간이 되면 항상 나무그늘 밑에 자리잡았다. 같은 반 여자아이들은 피구도 뜀틀도 하지 않는 A를 얄미워했지만, A의 옆에 B가 앉아 있어서 A에게 무어라 핀잔도 주지 못 했다. 
 나는 피구를 하는 틈틈이 몰래 A를 훔쳐보았다. B는 운동장에 나오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A의 옆자리에 다가갔다. 그리고 A와 B는 똑같은 모양의 체육복을 입고 똑같은 색의 양말을 신은 채, 모두가 분주한 운동장 속에서도 세상에서 자기들만 살아 숨 쉬는 양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그 둘은 특별한 대화 하나도 없이 그저 시간만 때운다는 식으로 무표정하게 앞만 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 곳에 싱크홀이라도 생긴 것처럼 둘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옷이나 양말, 신발 같은 획일화된 공산품들마저 A와 B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것 같이 보였다. 
 나는 공에 맞아 여러 번 아웃당했다. 우리 팀은 주스내기 시합에서 졌다.

 A는 이상한 애였다. 이상한 애라기보단 묘한 애였다. A에게는 어디에 있든 간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A가 있는 곳의 시간은 홀로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고 A가 움켜쥐면 하얀 분필도 빨개보였다. 
 그래서 학기 초만 해도 A의 움직임을 뒤쫓아 고개를 돌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A가 B와 함께 다니기 시작하면서 교실에는 앳된 동경과 축축한 질투 대신 묘한 이질감이 감돌았다. A 하나에만 집중되던 시선들이 B에게도 옮겨갔고, 우리 반 아이들은 별 것 아닌 일에도 수군대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담임의 경고가 하루에 네 번 높은 강도로 아이들의 주의를 환기시켰지만 교실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A는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A는 점심시간 종이 치기도 전에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렸다. B는 우리 반 교실 뒷문을 열고 나에게 A의 행적을 들은 다음 다시 쏜살같이 멀어져 사라졌다. A의 위치를 모르면 B에게 핀잔을 들었기 때문에 A의 궤적을 파악하는 것은 어느새 나의 일과가 되었다.

 별다른 큰 일 없이 몇 달이 지났다. 우리 반은 여전히 정제되지 않은 이질감과 적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자애들은 자주 울었고 남자애들은 자주 싸웠다. 무엇이 그토록 아이들을 날카롭게 벼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모두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날카롭고 따갑고 사나워 눈물짓는 팽팽한 와중에도 A는 바람같이 우리 반의 구석에 잠깐 머무르다 움직였단 것이다.
 나는 항상 A를 지켜봤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알게 모르게 A에게 정신적인 이지메를 가하고 있었다. A는 자신을 밀어내는 아이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그저 가만히 스스로가 무리 바깥쪽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을 방관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네들이 A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 한 것 같았다. A는 미묘하게 열이 어긋나 삐뚤어진 내 책상을 알면서도 그저 아이들이 자신의 옆을 지나가거든 안녕, 하고 배시시 웃을 뿐이었다. A 본인이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서 별다른 상처를 받지 않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안쓰러웠지만 내가 A를 굳이 신경 써서 챙겨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늦가을이었다. 단풍이 빨갛게 떨어지는 시기였다.

 그 해 가을바람은 이상하게도 유독 서늘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니트 조끼를 꺼내 입었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몇 명은 목도리를 두르고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한 해의 끝을 알려가는 낙엽의 알람 속에서, 내 차례의 주번이 돌아왔다.
 나는 학교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남아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돌아다녔다. 날씨가 갑작스레 추워진 탓에 오랫동안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운동장 구석에서, 과학실 구석에서, 가정실 구석에서 무언가에 열중하는 아이들에게 폐문시간임을 알리며 생쥐마냥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온 학교를 뒤지고 나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비상계단이었다. 대체로 잠겨 있는 날이 많아 수위아저씨들조차 잘 안 다니는 비상계단인데 굳이 내가 이곳을 확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등줄기가 오싹하게 소름이 돋고 괜히 머리가 찡하게 울리기에 나는 비상출입구의 문을 열었다. 비상계단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정확히는 B와 A였다. 나는 뒷모습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A가 B의 허벅지를 벤 채 길쭉하게 가로질러 비상계단 하나를 차지하고 누워있었다. 조심스럽게 연다고 열었는데 오래된 쇠문이 찢어지는 마찰음은 비상계단을 쩌렁쩌렁 흔들었다. 그러나 B와 A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깜짝 놀란 것은 문을 열어제낀 내 쪽이었다. 나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고, 뒷걸음질을 치는 통에 다리가 꼬여 복도바닥에 세게 주저앉았다. 내가 엉덩방아를 찧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B는 고개를 돌렸다. A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A가 어디 있냐던가 A가 오늘 오전에 학교를 왔냐던가 A가 오늘 몇 시에 등교했냐던가. 여태까지 내가 B에게 들어온 질문과는 사뭇 다른 저의가 그 기저에 진득하게 깔려있었다. 
견제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세련된, 분노라고 하기에는 너무 날 것인, 도무지 내가 파악할 수 없는 낯선 의도였다. 나는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오는 것을 느꼈다. 입 안이 바싹바싹 말라붙기 시작했다. 혼신을 다해 마른 침을 삼킨 난 B의 말에 겨우겨우 대답했다.

 "폐문, 폐문시간이라서……. 이제 집에 가라고……. 문 잠가야 해서……."

 B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는 건지 자는 척을 하는 건지 끙끙대며 뒤척이는 A를 바라보며 허벅지까지 말려 올라간 A의 교복치마를 내려 주었다.

 "A."
 "A, 일어나."
 "집에 가야 돼."
 "일어나, 바보야."
 "두고 갈 거야. 일어나." 

 B는 A의 허벅지에 오른손바닥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이야기했다. B의 목소리는 빈말로라도 썩 듣기 좋은 톤이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가만히 가라앉아 마치 아무런 방해물도 없는 널찍한 곳에 흐르는 물처럼 놀랍도록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A는 B가 다리를 붙들고 흔드는 와중에도 깨어나지 않았다. A가 무척 깊게 잠든 것 같아 나는 숨을 죽였지만, B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는 것을 봐서 A는 아마 자는 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B는 목소리를 키웠다.

"안 일어나면 버리고 갈 거야."

 A가 발바닥을 움츠리는 것이 보였다. A는 신발을 벗고 있는 채였다.

 "어리광부리지 마."
 "니네 반 애가 보고 있어." 

 A가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가 기지개를 폈다. A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몇 시야?"
 "폐문시간."
 "추워."
 "그래서 조끼 입으랬잖아."
 "조끼는 안 예쁜걸."
 "언젠 예쁜 거 입고 다녔다고."

B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A보다 두 계단 밑으로 내려가 양 손을 뻗었다.

 "일어나." 

 A가 B를 향해 두 팔을 내밀고 B가 A를 잡아당기는 순간,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B가 앉아있던 자리의 왼편, 바로 그 옆에 A의 까만 단화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A의 반질반질한 새 단화는 마치 진열대 속에 들어있는 것처럼 가지런한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내가 뒤로 물러나는 와중에도 B는 A의 두 팔뚝을 붙들고 있었다. A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주는 B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자꾸 이렇게 마구잡이로 자면 감기에 걸린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감기 걸리면 B가 간호해 줄 거잖아. 멍청아 그런 뜻이 아니잖아. 그런 뜻이 아니면 무슨 뜻인데? 굳이 사서 아프지 말라는 뜻이잖아. 나는 아프고 싶은데, 한 일주일 정도. 죽는다 너 진짜. 
새파란 하늘이 네모나게 비치는 가을빛 비상구의 서늘한 계단. 그리고 그 위에 나란히 앉아있던 까만 생머리의 B와 까만 광택의 윤기나는 학생구두.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헐떡이는 숨소리를 죽이려고 노력했다. 왠지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것 같았다. 까만 생머리, 까만 세라복, 주름진 교복치마, 통통한 허벅지, 길쭉한 종아리, 거리낌 없어 보이는 A의 새하얀 반양말, A의 앞머리를 빗어주는 B의 가느다란 손가락.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B는 A의 부속품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A가 들이마시는 공기만 색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A와 B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같은 빛깔의 기억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배타적인 유대감.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일 수도 있는 두 사람. 뱃속에서부터 혐오감이 차올랐다.
 A는 자신의 등 뒤에 내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알고는 있으나 아무런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의미를 두어야 할 필요도 못 느끼고 의미를 두어도 별 다른 이점이 없는 존재. A에게 나란 사람은, 이름도 모르는 같은 반 아이들만도 못 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A는 어느새 가만히 서서 커다랗게 뚫려있는 파란 가을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흔한 숨소리도 없이 진공처럼 조용한 공기 속에서 B의 긴 생머리가 계단 바닥에 사락사락 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B. 너무 조여."
 "참아."
 "발등이 아프단 말야."
 "새 신발이라 그래."
 "한 사이즈 큰 걸로 살걸."
 "저번에 그랬다가 넘어졌잖아."
 "그건 그렇지만……."
 "피 묻은 밴드 갈아주기 싫어. 안 넘어지게 해." 

 나는 A의 옆구리 쪽으로 B의 하얀 손이 거미처럼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다가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그 자리를 떴다. 조용한 복도에는 황급히 부딪히는 실내화 소리와 코끝에서 차오르는 거친 숨소리, 그리고 무척이나 서러워 삼키지 못 한 나의 울음소리만이 길게 울려 퍼졌다.

 그 이후로 나는 A와 거리를 두었다. 나는 점심시간이 되면 누구보다도 먼저 교실을 나가게 되었다. B와는 점점 멀어져 어느새 복도에서 마주치더라도 눈짓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나 B 둘 중 어느 쪽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애초에 B는 A가 아니면 나와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A마저도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제법 비참했다. 그것을 깨닫게 된 나는 비상계단에서의 그 때보다도 더 서럽게 울었다. 처음부터 B와 A는 내가 끼어들 수 없는 무리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아서, 너무나도 아픈 탓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그 둘은 특별한 사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하려고 노력해도 바보같이 착각을 한 내가 너무 한심해서 시도 때도 없이 눈물만 자꾸 차올랐다. B의 윤기나던 머리카락, B가 내려주던 A의 구겨진 교복치마, 흔한 땟자국 하나도 없이 뽀얗기만 하던 깨끗한 반양말. 남들과는 다르게 자기네만의 세상을 살아가던 그 둘을 나는 동경하고 있었다.

 내가 A를 외면하기 시작한 그 때부터 A의 교복이 더러워지는 날이 생겨났다. A는 가끔씩 냄새나는 구정물을 뒤집어썼고 매일같이 분필가루가 묻은 칠판지우개로 등을 얻어맞았다. 깨끗하게 세탁한 체육복 상의가 쓰레기장에서 발견되는 일도, 체육이 끝나면 교복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 때도 있었다. B는 A의 교복 뒤에 새하얗게 분필 자국이 묻은 날에는 분필만큼이나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우리 반을 찾아와 나를 불렀다.
 나는 A와 B를 피해 다녔다. 그러나 수업시작 종과 함께 교실에 들어서면 반 아이들의 다양한 눈초리가 내게 쏟아졌다. 쟤도 A랑 한 패 아니냐. A랑 이전에 같이 다니지 않았나. 한때는 잘 놀더니 이제는 무시하네. A랑 친구하긴 또 싫은가 보네. 온갖 경멸과 멸시와 혐오와 비웃음이 내 머리로 쏟아졌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참을 수 없는 것은 A의 변함없는 무기질한 눈빛이었다. 나는 이지메의 방관자가 되었다.
 이지메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 정도는 반에서 겉도는 나조차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A의 교복은 더 자주 찢어졌고, 세라복 칼라의 빨간 스카프가 무색하도록 하얀 손등 위로 피가 흐르는 날도 점점 늘어났다. A의 치마가 찢어지는 날에는 교실 뒤편에서 A를 놀리고 비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A를 향한 반 아이들의 응징은 점점 더 차오르기만 했다. 때로는 교실 가득 묵직하게 가라앉기도 했다. 찝찝하고 눅눅하고 조금 신경질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를 괴롭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대해져만 갔다. 
 나는 A가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는 것을 매일같이 지켜봤다. A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가끔 내 숨을 벅차게 했고, 허벅지 안쪽을 간지럽히기도 했다. 모두의 마음속에 가라앉아있던 증오심과 질투심이 내 안의 끔찍한 성욕을 부추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을 자다 오밤중에 깨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렇게 깨어나는 날에는 꼭 A를 떠올리며 자위를 하다가 다시 잠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A와 B는 일주일이 넘도록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A의 책상이 비워진 우리 반은 잠깐이나마 균형을 찾았다. 그러나 그 균형이 무색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학생들 사이에선 듣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추잡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강간, 윤간, 돌림빵, 집단섹스. 
소문은 점점 더 심각해져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A가 이지메를 그만 두라고 부탁하는 대신 자처해서 몸을 대줬다는 데까지 변질되었다. 나는 그 소문을 듣는 날이면 어김없이 먹은 것을 모두 토해냈지만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A가 등교거부를 그만둔 것은 방학을 이주일 앞 둔 날이었다. B도 A와 함께 학교에 나왔다. A의 커다란 눈가에는 살색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보기 좋게 통통하던 볼살은 바싹 빠져 광대뼈가 드러나 있었다. 분홍색의 동그랗던 무릎과 팔꿈치에 네모난 거즈를 붙인 채로, A는 교복치마 밑에 체육복 바지를 받쳐 입고 있었다. 
 A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은 경이로웠다. A의 새하얀 실내화가 삐걱대는 마룻바닥을 밟아 누르자 말로 표현 못 할 끔찍한 침묵이 학교 전체를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A는 내 옆자리, 매직으로 잔뜩 돼지라고 낙서된 자신의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헛구역질을 하며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지르자 A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그러나 조금 어색해진 웃음으로 조용히 대답했다. 미안해, 이 주만 참아줘. 이지메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B는 일 교시가 끝나자 책상을 끌고 우리 반에 찾아왔다. B의 긴 생머리는 어느새 어깨 위로 짧게 잘려 있었다. B가 내 책상과 의자를 밖으로 밀어내며 내게 소리쳤다. 선생님하고 이야기했으니까 너 우리 반 가. 우리 반 가라고. 귀 안 들려? 너 귀머거리야? 벙어리야? 왜 대답을 안 해, 너 우리 반으로 가라고! 내가 여기 앉는다고! 나는 내게 쏟아지는 B의 증오를 느꼈지만 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B의 날카로운 비명은 칼처럼 내 몸통을 후벼 파고 들어왔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대신해서 벌을 받는 것처럼 고개를 숙였고, B는 수업 종이 치자 다시 책상을 질질 끌며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쇠파이프가 바닥에 긁히는 듣기 싫은 소리가 계속해서 내 귓가에 맴돌았다.
 일주일 정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B는 매 시간마다 우리 반에 찾아왔다. 그리고 A의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내게 소리를 질렀다. 너 우리 반으로 가. 나는 입을 다물었고, A도 입을 다물었다. B는 목이 말라 기침을 하면서도 소리를 질렀다. 자신이 끌고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쉬는 시간마다 내 책상을 밖에 내팽개치려 했다. 눈가를 새빨갛게 달군 B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울음은 터뜨리지 않았다. 
 B는 서러워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도 비참했다. 

 A에게 붙어있던 밴드와 거즈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A의 뺨에 흐릿하게 남아있던 피멍의 흔적들은 어느새 많이 사라져 있었다. A는 점심시간이 되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A의 의자에는 B가 가져온 귀여운 디자인의 푹신푹신한 방석이 하나 놓였다. 
 내 눈에는 A가 앉아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을 더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리도 아니었다. A는 나쁜 의미로 우리 학교의 마릴린 먼로가 되어 있었다. 쟤가 그, 아 쟤가 바로, 저 애가 그렇다며, 정말? 더러워. 그런 A를 꼬박꼬박 찾아와 챙기는 것은 B였다. B는 매일같이 도시락을 두 개 들고 우리 반에 찾아왔고, 점심시간까지도 남아있는 몇몇의 아이들을 찢어 죽일 것처럼 이를 악물며 노려봤다. A는 B가 찾아오고 나서야 배가 고프다며 칭얼거렸는데 그러면 B는 얌전히 도시락을 열어 풀고 A에게 수저를 쥐어주었다. 나는 책상에 엎어진 채 A의 애교어린 투정과 B의 따가운 눈초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자는 척을 했다.
 A는 상처가 완전히 낫고 나서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같던 A는 마치 바위라도 된 것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가만히 나무인 양 제자리에 박혀있는 A의 모습에서 나는 이상한 쾌감을 느꼈다. 키우지도 못 할 들짐승을 붙들어 우리에 가둬둔 것 같은 기분이었다.
 A는 그 일 이후 가끔 발목까지 흘러내리는 양말을 신고 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새하얀 반양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A는 일부러 발목이 늘어진 양말을 신고 오는 것 같았다. B는 A가 그런 양말을 신고 올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허리를 숙였고, 본인의 속바지가 보이든 말든 언제 어디에서나 A의 양말을 올려주었다. 
 A는 허리를 굽히거나 제자리에 쪼그려 앉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게 된 것처럼 보였다. A는 절대로 허리를 숙이거나 의자가 아닌 곳에 앉지 않았다. 오죽하면 신발마저 B가 신겨주어서, 나는 무릎을 꿇어 A의 신발을 챙겨 주는 모습의 B를 자주 목격하였다. B가 A의 발등을 한 손으로 감싸 신발에 넣어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내가 그런 상념들을 금방 잊을 수 있게 될 때쯤에 졸업식이 다가왔다.

 나는 졸업식 도중 강당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강당에 붙어있는 화장실에 가는 것이 맞는 일이겠지만 나는 무언가를 확인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본관 2층 화장실로 향하는 비상계단을 걸어 올라갈 때, 얼마 전 느꼈던 익숙한 예감이 나를 덮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주번을 맡았었던 어느 새빨간 가을날의 불길함, 비상구 앞에 선 나를 조금 망설이게 만들었던 오싹한 소름, 창문을 통해 바라봤던 서늘하게 새파란 하늘의 섬찟함. 그러나 나는 하나하나 조용히 계단을 밟았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있었다. 
 상처로만 남았던 비상출입구의 쇠문을 잡아당기자, 한껏 펼쳐진 복도가 보였다. 나는 왼편으로 꺾어 들어가 어두컴컴한 구석의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무언가를 훔치러 가는 것처럼,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처럼, 도둑질을 하는 것처럼, 나는 까치발을 한 채 화장실로 들어가 숨을 죽였다. 오른쪽의 칸 하나가 문이 닫혀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B, 나 괜찮아."

A였다.

"소독은 했어?"

B도 함께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손이 떨려오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떨려오는 손을 진정하는 대신 숨소리를 죽이는 것에 더 집중했다.

"나 처녀도 아니고……."

"소독은 했냐고."
"별로 안 아팠고."
"의사가 뭐래? 괜찮대?"
"그냥 걔가 나 좋다고 하니까……."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텐 안 그래!" 

B는 울고 있었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텐 안 그래 이 멍청아! 진짜 사랑하는 사람한텐 안 그래 이 병신아! 내가 너한테 그런 적 한 번이라도 있어? 내가 너 싫다 할 때 한 번이라도 그런 적 있어? 네가 아프다 힘들다 안 하고 싶다 이럴 때 내가 너한테 뭐라도 억지로 한 적 있어? 걔가 사람이면 안 그래, 걔가 인간이면 안 그래!"
"나도 알아 B."
"고소라도, 신고라도 하지 그랬어. 차라리 나한테 패 달라고 하지 그랬어! 왜 입 다물고 있는 건데 왜 가만히 있는 건데! 네가 병신이야? 네가 호구야? 귀 먹었어? 못 듣는 것도 아니고 왜 여태까지 옆에서 그 지랄하는 거 빤히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는 건 또 뭔데?" 
"불쌍해서 그랬어."
"그런 개새끼가 뭐가! 그런 씹새끼가 뭐가! 그런 씹어 먹어도 모자랄 년이 뭐가 어디가 어떻게!"
"내가 안 대주면 B도 괴롭힌다 했으니까……."
"네가 뭐라고 네가 그러는데! 내가 뭐라고 네가 그러는데! 나는 뭐 못 참을 거 같아? 너도 참는 거 왜 내가 못 참는데? 너는 왜 내가 못 참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데? 나는 뭐 사람 아니야? 네 눈엔 내가 사람도 아니냐? 너보다도 내가 더 잘 참어, 너보다도 내가 더 잘 버텨! 적어도 난 입 닥치고 가만히는 안 있어!"
"B라서, 걔가 B 강간한다 그래서 그랬어."
"병신, 머저리, 호구야, 바보야, 등신아, 멍청아……." 

 B가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A가 벽에 기대어 있었는 듯, 고무깔창이 바닥에 미끄러지며 문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화장지가 둘둘 풀리는 소리와 함께 휴지걸이가 가볍게 흔들렸다. B는 그리도 서럽고 힘들고 괴로웠던 모든 것들을 A에게 토해내고 있었다.
 나는 숨도 쉬지 못 한 채 칸막이 앞에 서서 화장실의 조그마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화장실 안으로 달려오고 있었지만 화장실은 여전히 새벽처럼 어두컴컴했다. 양달과 응달, 계단과 계단, 날 힘들게 만들었던 어느 늦가을 새빨간 단풍. 지나간 시간들이 무색하도록 완연한 봄이 새까만 화장실의 정중앙을 갈랐다. 
 나는 내 세계와 다른 세계의 틈새로 그어진 햇빛의 경계 속에 바로섰다. 새 계절의 지탄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어떠한 변명을 거쳐도 네가 A를 강간한 건 달라지지 않는다고. 어수룩한 네 사랑이 청순하고 추잡하여 같잖은 네 욕망을 걸러내지 못 했다고. 타인에게 네 성기가 흉터로 남은 모습을 본 심정이 어떠냐고. 어둠 한가운데 휑하게 꿰뚫린 한 뼘 남짓한 질책의 공간은 먼지와 꽃가루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나의 폐가 내 산소의 거름망이라는 것을 알듯이 나의 사랑이 내 욕망의 거름망이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완결이 난 미성년을 축하하는 설익은 봄. 그 안에서 나는 A의 목 늘어진 반양말처럼, 눈이 시리도록 새파래서 창백하던 가을 하늘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알려 하지 않았던 내 징그러운 사춘기와 비로소 마주했다. 
 나는 빛이 비추는 화장실 바닥에 조용히 엎드렸다. 물에 젖은 타일은 축축했지만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느새 어깨 너머로 길어진 내 머리카락이 물기를 머금고 묵직하게 늘어진다. 눈앞이 뿌옇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칸 밑 조그마한 틈새로 드러나는 두 켤레의 신발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고무패킹, 동그란 앞코. 어두운 화장실 안에서도 하얀 두 실내화는 분필처럼 뽀얗게 빛났다.

"B. 울지 마."
"안 울어……."
"미안해 다음부턴 안 그럴게."
"다음부턴 절대 안 그럴 거라고 해."
"다음부턴 절대 안 그럴게."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 없게 해"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 없게 할게."
"흑……."
"울지마, B.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울지마, B. 잘못했어."
"그 새끼 내가 죽일 거야. 그 새끼 내가 죽여 버릴 거야."
"……."
"이따가 같이 병원 가. 내 앞에서 진찰받아."
"응. 알았어."
"내가 약 사 줄 테니까 그걸로 꼬박꼬박 소독해."
"응. 알았어."
"내가 맨날맨날 다리 벌려서 검사할거야. 상처 남아있나 검사할거야."
"응. 알았어."
"어허엉……."
"울지 마, B. 자꾸 울면 머리아파."
"흐어엉……."
"B, 안아줘."
"으흐엉……."
"B, 키스해줘."
"흑, 윽, 흡……."
"다 나으면 섹스하자."
"응, 응……."

 나는 하얀 실내화가 하얀 실내화 사이로 끼어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두 켤레의 신발이 한 켤레의 신발처럼 겹쳐져 하나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화장실을 울리던 두 목소리가 한 종류의 소리로 달라붙는 것을 들으면서, 그토록 더럽고 찬란하던 내 사랑이 마침내 끝이 나는 것을 느꼈다.

'로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은 비를 타고  (0) 2015.07.01
바수밀다&베로니카 샘플  (0) 2015.06.24
시간  (0) 2015.06.14
월야환담 전력 60분 - 여름  (0) 2015.06.06
월야 전력 60분 - 책  (0) 2015.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