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랑 저요, 별 거 없어요."
"걔가 잔디밭에 누워있으면 저는 그냥 걔가 벌레한테 물릴까봐 무서워하는 그런 사이요."
"……."
"……."
"……."
"……."
"형사님."
"저는요, 이런 일 한 번도 안 당해본 사람이 당한 사람한테 이렇게 단서 캐내려고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형사님."
"강간당해본 적 있어요?"
"야구방망이로 뒤통수 맞아본 적은 있고, 배때기에 칼빵 맞아본 적은 있지만 강간 당해본 적은 없죠?"
"그게 형사님의 한계에요."
"형사님 걔 작년에 수술받은 거 아세요?"
"걔가 생리 안 하는 것도 아시구요?"
"걔 작년에 경부암 때문에 수술 받았어요."
"걔 윤간당해서 죽을 뻔 했어요, 작년에."
"그래서 제가 대신 대준 거구요."
"걔한테 다시는 손 안 대는 조건으로 돌았어요, 다섯 명."
"얼굴 아는 애가 둘 얼굴 모르는 애가 셋이요."
"걔네 신상 닥치는 대신 살아 돌아온 거고."
"임신은 사후피임약 먹어서 안 했구요."
"할 말 없으세요?"
"뭐라도 더 할 말 없으시냐구요."
"지금 이 일에 제일 화내는 사람이 누구일 거 같으세요?"
"걔? 아니면 저?"
"지금 여기서 형사님이 제일 화내고 계시는 거 알아요?"
"저도 괜찮고 걔도 괜찮고 다 괜찮은데 왜 형사님이 화를 내요?"
"왜요?"
"제가 형사님 와이프인 것도 아니고."
"걔가 형사님 와이프인 것도 아닌데."
"걔 자궁 없어서 살기 좆같다고 자살한 거 아니에요."
"돌림빵 당한 거 때문에 자살한 것도 아니구요."
"걔는 그냥, 제가 사후피임약 먹었다고 그게 미안하다고 자살한 거에요."
"그냥 그런 거에요, 형사님은 이해 못 하시겠지만."
"걔, 잔디밭에 절대 못 눕는 거 아세요?"
"저랑 걔랑 소꿉친구거든요? 유치원 때부터 쭉 같이 다녀서?"
"유치원 때... 그러니까 여섯 살? 다섯 살? 여튼 그 때 만나서 계속 같이 다녔는데."
"걔 초등학생 때만 해도 막 잔디만 보면 거기서 놀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고."
"초등학생 때는 막 보이는 대로 잔디밭에 다 드러누웠다가 쯔쯔가무시 물리고 그랬거든요 그 때 걔 진짜 황천갈 뻔 했는데."
"중학생 때는 반이 갈렸어요, 걔는 2반 저는 7반."
"그래도 등교랑 하교는 꼬박꼬박 같이 했는데, 집에도 같이 갔거든요. 같은 아파트 단지라서."
"……."
"걔 허벅지를 보면요,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새빨갛게 자국 많이 남아있었거든요, 벌레자국. 교복치마 입고 잔디밭에 자꾸 주저앉아서."
"모기도 물리고, 무슨 이름모를 벌레한테도 물리고. 그래서 여기, 여기 허벅지 뒤쪽이랑 다리 사이에, 여기, 여기요. 여기가 막 새빨갰어요."
"근데 하루는."
"아,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긴 거 아시죠?"
"아시잖아요, 저보다 나이도 많으신데, 형사님."
"근데 형사님."
"몇 살이에요?"
"와, 늙었다. 저랑 거의 두 배? 세 배?"
"하하, 대박. 저 이렇게 나이많은 아저씨랑 얘기하는 거 처음이야."
"걔는 엄마가 가출하고, 저는 아빠가 자살했거든요. 어렸을 때."
"걘 엄마가 없고, 저도 아빠가 없고. 그래서 친해진 거에요."
"근데 저 원래 남자 싫어해요."
"그래서 지금 형사님하고 있는 것도 막 소름끼치게 싫은데, 그래도 형사님 다 늙어서 막 고등학생 애들한테 막 묻고 그러는 거 기분 나쁘니까."
"마누라도 있어요?"
"이뻐요?"
"팔불출이다 완전 징그럽다."
"근데 하루는."
"애가 잔디밭에 안 앉는 거에요, 봄이었는데."
"봄에 잔디밭 완전 새파랗잖아요? 막 이렇게 새 잔디 나고 그래서 학교에, 학교 뒤에 뒷동산 아시죠 거기 잔디가 진짜 새파란데 걔가 거길 되게 좋아했거든요."
"잔디밭에 안 앉는 거에요."
"걔가 잔디밭에 안 눕고 그냥 가는 거에요 교실로."
"그래서 오늘은 안 눕냐고 물었더니."
"이제 안 눕고 싶대요."
"그래서 왜? 너 잔디밭 좋아하잖아? 하고 물었는데."
"어제부터 싫어하기로 했대."
"근데 원래 중학생 땐 다 오락가락 하잖아요 좋은 것도 갑자기 싫어지고 싫은 것도 갑자기 좋아지고."
"고기만두 먹고 싶다."
"학교 앞에 고기만두 되게 맛있었는데."
"저희 중학교 앞에 분식집 있었어요, 마니또 분식. 거기서 만두를 개당 100원에 팔았는데, 열 개 사면 하나 더 줬어요. 천원에 열 한 개."
"근데 만두를 더 넣어줘도 그게 갯수가 안 맞잖아요. 둘이 먹어야 하는데 열 한 개니까, 게다가 막 그때그때 달라요 하나 더 넣어주는 만두 종류가."
"어쩔 땐 고기만두 넣어주고 어쩔 땐 김치만두 넣어줬는데, 걔가 마니또 아줌마랑 친해서 제가 만두 사가면 아줌마가 맨날 김치만두만 넣어줬어요."
"아니 돈은 똑같이 내는데 걔는 만두 여섯 개 먹고 저는 다섯 개 먹게 되는 거잖아요 기분나쁘게."
"그래서 막 너 그럴 거면 열 개 사오지 말고 그냥 스무 개 사와서 둘다 열 한 개씩 먹자고 울면서 싸웠는데."
"걔가 다음 날에 고기만두만 열 한 개를 사왔어요, 자기는 고기만두 먹으면 토하면서."
"걔 진짜 짜증나서, 막 아줌마랑 친하다고 자랑하는거야? 하면서 저 혼자 고기만두 열 한 개 다 먹고 그 날 밤에 만두 체해서 응급실 갔어요."
"그 날 부턴 걔랑 저랑 김치만두만 먹었는데."
"갑자기 고기만두 먹고 싶네요."
"형사님 걔네 아빠 취조 해봤어요?"
"안 해봤죠?"
"해봤어요?"
"근데 그래놓고 저한테 온 거에요?"
"그 새끼가 뭐라고 말 했는데요?"
"그 씨발새끼 좆을 잘라버려야 하는데."
"저랑 걔요, 서로 생리주기도 다 알아요."
"서로 며칠에 생리하고, 무슨 생리대 쓰고, 누구랑 키스하고, 누구랑 섹스하고, 몇 번 낙태했는지 저랑 걔랑 다 알아요 서로."
"중3 때 걔가 한 달 걸렀거든요, 생리를."
"왜 걸렀나 했더니 걔네 아빠가 걔한테 피임약을 먹였어요."
"……."
"……."
"……."
"그 때부터 걔 주기가 막 흐트러졌어요. 원래 걔 25일만 되면 꼬박꼬박 했거든요, 생리를. 딱 일주일. 이틀은 막 생리통때문에 누워 지내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려했는데 걔가 잔디밭에 앉지를 않은 게 너무 마음에 걸려서, 걔 생리 끝났다길래 화장실에서 야 너 치마 걷어봐 이랬어요, 제가."
"……."
"……."
"……."
"……."
"잔디밭에 앉지도 않았는데 허벅지 안 쪽에 막 새빨갛게 뭐가 나 있더라구요."
"하 참 나……."
"너 누구랑 섹스했어?"
"……."
"너 누구랑 떡쳤어?"
"……."
"개년아 너 누구랑 콩깠냐고."
"……."
"걔가 막 울면서 그래요."
"……."
"아빠 친구랑……."
"좋았어?"
"아니 싫었어."
"한 번만 했어?"
"아니."
"몇 번 했어?"
"열 두 번……."
"또라이 새끼."
"한 달 동안 떡을 열 두 번을 쳤대, 또라이 새끼가."
"애비라는 새끼는 그걸 또 가만히 보다가 피임약을 준 거에요 임신하지 말라고."
"개씨발새끼."
"좆같은 새끼."
"지 사업하는데 돈대준다고 지 딸래미를 팔아넘겨 개씨발새끼 좆같은 새끼 그러니까 마누라가 도망가지. 씹창새끼. 개좆같은 새끼."
"근데 약을 주려면 좀 일찍 줄 것이지 중간부터 주니까."
"먹는 법도 안 가르쳐줘서 설명서보면서 먹었는데, 사후피임약이 아니라 그거 생리주기 조절하는 약, 그걸 먹어서."
"……."
"……."
"……."
"걔가 한 번 뗐어요, 애를. 중 삼 겨울에. 고등학교 배정되고 나서."
"걔네 아빠 말리다가 저도 한 대 얻어맞아서 이마 찢어지고 걔는 무슨 어딘지도 모르는, 어디지? 이산부인과? 김산부인과? 몰라요 씨팔 네이버에 찾아도 안 나와."
"그러고서 겨울방학 내내 못 보다가 같은 학교 배정받았으니까, 같은 학교 왔으니까. 여기."
"……."
"애가 바싹 말라서, 걔 교복 맞출 때 제가 같이 갔거든요. 걔 교복 맞출 때 제가 같이 갔어요, 그 때 오래간만에 만나서 몸은 괜찮냐 요즘은 어때, 하고 물으면서 사이즈 재려고 윗도리를 벗겼는데."
"……."
"흑……."
"걔는, 걔 학교 다닐 동안……."
"체육복도 드러내놓고 갈아입은 적 한 번도 없어요……."
"옷도 제대로 못 갈아입었어요 걔……."
"누구,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으니까, 그런 거……."
"어떻게 말해요, 계속 젖이 나온다고……."
"밑에 긁어낼 때 뭘 잘못 건드렸는지, 아니면 피임약을 잘못 먹었는진 몰라도 한겨울인데 브라가 잔뜩 젖어있어서……."
"너 이거 왜 그래 했더니……."
"애를 떼도 젖이 자꾸 나온대……."
"뭐 어떻게 해줄 수가 없으니까 그냥 닦아주고……."
"걔랑 브라를 바꿔입었어요. 저는 사이즈도 다 쟀고 걔만 재면 되는데, 브라가 젖어있으면 그것도 그러니까……."
"사이즈 안 맞는 거 꾸역꾸역 입고 나가서 재는데."
"걔는 계속 불안해하는 거에요, 혹시 손이라도 닿아서 젖 나오는 거 알아채면 어쩌지 하고……."
"……."
"……."
"……."
"……."
"애 떼는 거 솔직히 당연히 떼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했어요 왜냐면 걔니까, 걔도 사람이잖아요."
"걔가 고등학교 졸업해서 대학을 가면, 대학을 가게 되면, 남자친구도 생기고, 나중에 선봐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서, 우리 딸이야 이쁘지? 하고 자랑하거나 아니면 막 우리 아들이야 잘생겼지? 하거나……."
"저도 남자친구 생기면 막 걔한테 남자친구 사진 보여주고, 결혼식에 들러리로 서주고, 결혼식에서 축가도 불러주고, 신부대기실에서 사진도 막 같이 찍고……."
"저는 걔랑 그럴 거라고 당연히 생각해왔거든요……. 평범하게 살려면……,보통 미성년자인데 애 같은 거 안 낳으니까, 애 떼야 한다고……."
"걔가 그 때 입었던 브라 아직도 저희 집에 있어요……."
"젖냄새라는 거 처음 맡아봤어요……."
"개씨발새끼, 제가 그 때, 걔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데, 막 가슴이, 브래지어가 축축해서, 흑……."
"……."
"……."
"……."
"솔직히 너무 놀라서, 한동안 걔 얼굴만 봐도 화가 났어요……."
"……."
"……."
"……."
"……."
"너 요즘도 그 새끼랑 자?"
"아니."
"그럼 너 요즘은 누구랑 자?"
"……."
"왜 말을 안 해?"
"……."
"약은 먹고 있어?"
"……."
"……."
"……."
"……."
"……."
"이번 달엔 몇 번 했어……?"
"스무 번……."
"저번 달엔……?"
"맨날맨날……."
"죄송해요."
"아 감사합니다."
"잠깐만요."
"네 이제 괜찮아요."
"네 잠깐……. 네. 그 때 놀랐던 게 생각나서. 아 코맹맹이 소리 하하하하 나 어떡해 하하하."
"아저씨 딸래미 있어요?"
"와 그래요? 몇 살인데요?"
"한참 어리네! 예쁘겠다……."
"……."
"……."
"……."
"……."
"걔도 이뻤거든요……. 아저씨는 사진으로만 봐서 모르죠?"
"걔가 잘 웃어줬는데, 머리도 막 그냥 하나로 묶고 다녔는데, 걔는 화장 안 해도 진짜 이뻤어요."
"막 전지현, 김혜수, 송혜교 그런 배우들보다도 걔가 더 예뻤어."
"걔네 집에 샴푸도 없는 거 알아요?"
"걔네 집에 샴푸도 없어서 걔 중학생 때까지 비누로만 머리 감았어요."
"그래서 제가 걔한테 몰래몰래 린스 주고 트리트먼트 주고 그랬는데."
"진짜 좆같은 게."
"모의고사 때문에 걔네 집에 갔더니."
"샴푸, 린스, 트리트먼트, 헤어팩, 헤어오일, 에센스에 바디샤워 바디로션 바디오일 씨발……."
"제일 좆같았던 게 입욕제에요."
"지 딸자식 샴푸도 안 사다주던 새끼가 입욕제를 사 줘."
"지 딸자식이 비누로 머리를 감든 잿물로 머리를 감든 관심 티끌만치도 안주던 새끼가 입욕제에 질 세정제까지 다 사주고 앉아 있었다고."
"……."
"……."
"냄새 좋더라구요, 존나 비싼 거라."
"……."
"……."
"……."
"……."
"한동안은 괜찮았어요. 유월 모의고사 끝날 때까지. 걔도 저도 그냥 입 다물고 맨날 막 선생님 뒷담까고 수학문제 안 풀린다고 욕하고 숙제 욕하고 수행평가 같이 하고 그랬으니까……."
"……."
"……."
"……."
"……."
"……."
"……."
"……."
"저 잠깐 뒤돌아서 말하면 안 돼요?"
"……."
"……."
"……."
"……."
"……."
"……."
"……."
"……."
"……."
"……."
"……."
"옆에 똥통학교 하나 있었거든요."
"이거 걔네 신상 얘기하는 거긴 한데 그냥 모르는 척 해주세요."
"죽어도 내가 죽지 아저씨가 죽나."
"……."
"어쨌든, 똥통학교 하나 있는데."
"……."
"똥통학교……하나, 있는데……."
"……."
"……."
"……."
"……."
"소문이 났나봐요, 걔 몸 판다고."
"……."
"지네 아빠랑도 자고, 지네 아빠 친구랑도 자고, 지네 학교 선생이랑도 잔다고."
"돈주면 다 대주고 다 해준다고."
"……."
"……."
"……."
"……."
"걔네 아빠새끼 그 새끼 무슨 일 하는지 제가 말씀 안 드렸죠."
"……."
"……."
"……."
"……."
"……."
"……."
"걔네 아빠 친구가 거기 교감이에요, 거기 똥통학교."
"형사님 좋으라고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증거도 없어서 못 잡아넣는다고 했고."
"여기 시골바닥, 사람도 별로 없어서 알 사람은 다 알아요, 걔 계속 몸 팔렸던 거, 강간당했던 거."
"아저씨 대전에서 왔다면서요?"
"좋겠다, 도시사람……."
"도시에서 이런 짓 하면 진짜 큰일난다면서요. 막 학교 짤리고 수배전단지 붙고 막 그런다고."
"대전에서 태어날걸."
"아니면 그냥 사람도 아니고 막."
"불로 태어날걸."
"여기 사는 새끼들 다 태워죽이게……."
"제가 고 1 때 자궁경부암 주사를 맞았거든요."
"근데 걔가 산부인과 가는 걸 진짜 무서워했어요 다 알 거라고."
"……."
"혼자 가기 무서워서 억지로 끌고 갔는데."
"걔는 주사 못 맞고 저만 맞았어요, 돈이 없어서."
"저는 엄마가 카드 줬는데, 걔는 용돈도 한 달에 오천원 받았으니까."
"막 십 몇 만원씩 드는 거 맞을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그냥 다음에 대학생 되면 맞자, 대학생 되면 알바해서 맞자 했거든요 제가."
"……."
"……."
"……."
"……."
"……."
"……."
"……."
"……."
"……."
"……."
"……."
"……."
"……."
"……."
"……."
"몰랐는데……."
"똥통학교 있잖아요 옆학교."
"거기 운동장에 잔디 깔려있더라구요."
"……."
"……."
"……."
"……."
"……."
"……."
"……."
"……."
"……."
"……."
"……."
"……."
"……."
"……."
"아프다 어쩐다 그런 말로는 표현을 못 하는 거잖아요."
"……."
"그런 거 안 겪어본 사람이 아프겠다 괴롭겠다 힘들겠다 그런 말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자기네들은 타인이고, 다른 사람이고, 그런 고통 직접 겪어본 적 없으니까, 그런 말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인간적으로……."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 입을 다 찢어버리고 싶었어."
"입을 찢어서 혀를 뽑아다가 혀 대신 못을 박고 싶었어."
"다른 것도 아니고."
"괴롭겠다, 힘내라, 너는 잘못이 없다."
"마지막 말이 제일 싫어요."
"잘못 없는 거 아는데 왜 남의 마음을 멋대로 짐작해?"
"왜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거라고 멋대로 넘겨짚는데?"
"오히려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거잖아요 저런 말!"
"네가 잘못했다 네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할 거다 네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까 네가 잘못한 거다 지금 이 소리를 착한 사람인 것처럼 포장해서 말하고 있는 거잖아 지금!"
"지가 뭔데!"
"걔가 어디 살고 걔네 가족이 몇 명 있고 걔네 집이 주택인지 아파트인지 걔네 집이 가스레인지를 쓰는지 인덕션을 쓰는지 알지도 못 하면서!"
"걔네 엄마가 언제 가출했고 걔네 아빠새끼가 무슨 일을 하고 걔가 화장을 하는지 안 하는지 그런 거 좆도 모르면서!"
"……."
"……."
"……."
"……."
"다른 거 다 좆같은데 특히 더 좆같은 게."
"교복 다 찢어져서 너덜너덜해진 걔."
"그 학교 교감이 제일 처음 발견했다는 게 제일 싫었어요."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씨발……."
"가서 검사했더니 경부암이라 했다고."
"진행도 많이 되어서 자궁을 통째로 떼내야 한다고."
"근데 씨발 끌고 가서 검사시킨 새끼가, 거기로 걔를 끌고간 새끼가……."
"씨발 걔가 얼마나 산부인과를 싫어하는데."
"진단서에 경험있음 경험없음 그거 적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개좆같은 새끼 개씨발 새끼 개좆같은 강간범 새끼 범죄자 새끼……."
"윤간을 당하고 강간을 당하고 그런 거……."
"그런 거 다 묻혀버리고……."
"그냥 돈 받고 대줬다고 그런 얘기만 나오고……."
"……."
"……."
"……."
"……."
"……."
"……."
"……."
"……."
"……."
"……."
"……."
"……."
"진짜, 진짜, 진짜진짜……."
"그런 거, 그런 거 원래 한 번 시작하면 안 끝나니까……."
"누구 하나 죽기 전까진 안 끝나니까!!"
"걔 한 번만 더 당하면 죽어!! 여태 많이 당했으니까!!"
"걔 당하다 죽으면 나도 죽어!! 걔 그러다 죽으면 나도 죽는다고!!"
"내가 죽을 거 같아서 내가 대신 대줬는데 그게 뭐가 나빠요!!"
"걔가 당한 건 처벌도 안 하면서!! 내가 걔 대신 대준 건 꽃뱀이라고 나를 잡아들여? 감히? 당신이 뭔데!!"
"그 새끼들 씨발 개좆같은 개새끼들!!"
"가능하면 내가 그 새끼들 자식들을 죽여버리고 싶었어!!"
"네놈 새끼들이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거 눈 앞에서 찢어 죽여버리고 싶었어!!"
"내가 걔 대신 임신하고! 그 좆같은 새끼 애새끼를 낳아서라도! 그 새끼들하고 그 새끼들 세상에 싸지른 걔네 부모 앞에서 그 새끼 좆같은 핏줄들 한꺼번에 다 찢어 죽여버리고 싶었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토막토막내서!! 손가락 하나하나 발가락 하나하나 죄다 토막내서 어디 산에다가라도 버려버리고 싶었는데!!"
"근데 씨발 나는 그걸 못 하잖아!!"
"쳐 죽이고 싶어도 못 죽이고!!"
"쳐 죽일 놈들은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불에 태워죽여도 모자라고 패죽여도 모자란 새끼는 뻔뻔하게 교감 직급달고 잘만 살아가!!"
"내가 그 새끼들 자식들 임신해서 토막토막 쳐다가 그 새끼들 집에 택배로 보내려고 했는데!!"
"하하……. 씨발……."
"다 좆같애, 다 쳐죽여버려야 돼……."
"아저씨도 자식새끼 있으면 알잖아."
"내가 아저씨 자식새끼 죽여버린다하면 아저씨 기분 좋겠어요?"
"내가 아저씨 자식새끼 사창가에 돌려버린다하면 아저씨 기분 막 째지겠어?"
"……."
"왜 때려?"
"왜요?"
"얘기만 들어도 씨발 개같아서?"
"얘기만 들어도 진짜 씨발 개같아서 살기 싫지?"
"근데 걘 그러고도 살았어."
"걔가 나중에 새 브래지어 사와서, 미안하다고, 자기 젖 떼는 약 먹었더니 금방 그쳤다고."
"고기만두랑 같이 브래지어 사다가 줬는데."
"그게 언젠 줄 알아요?"
"걔 퇴학당하는 날이었어."
"나 깜빵에 집어넣어도 상관없는데, 솔직히 요즘 시대에 누가 꽃뱀질로 깜빵엘 가?"
"아저씨가 나 여기서 깜빵 집어넣으면, 나 깜빵 들어갔다 나와서 무슨 짓 해도 아저씨는 상관없는 거 알죠?"
"하하, 신난다……."
"깜빵 갔다 나오면 저 바로 흥신소 찾아갈 거에요."
"얼굴 모르는 애들? 얼굴 몰라도 목소리는 다 기억해요."
"나 맨날맨날 자기 전에 그 새끼들이 무슨 말 했는지 다 곱씹으면서 자."
"목소리가 다 비슷비슷하면 비슷한 놈들 다 잡아들이면 돼."
"형사님, 제가 말했잖아요, 저 남자 싫어한다고."
"남자를 싫어하는데 왜 남자랑 잤을까요?"
"아저씨, 아니 형사님, 아니 아저씨, 나 진짜 궁금해서 그래."
"내가 남자를 그렇게 싫어하는데 왜 내가 남자랑 잤을까?"
"거기서 제가 강간을 당했는데 사후피임약을 받을 수 있느냐 했더니 의사가 막 놀라요 신고했냐고."
"그래서 네 신고했어요 그런데 사후피임약 받을 수 있냐고 막 그랬는데……."
"……."
"……."
"……."
"아……. 죽고 싶다……."
"아저씨, 제가 무슨 생각이었는진 모르겠는데."
"하나는 기억이 나요, 제가 걔한테 가서."
"……."
"걔한테 간 거까지밖에 기억이 안 나요."
"그랬더니 다음날 걔가 자살했대."
"하하, 말도 안돼……."
"왜지……."
"저요, 걔가 결혼하는 거 보고 싶었어."
"걔가 결혼하고, 걔네 아빠 없이도 잘 살고, 남편이랑 알콩달콩 자식도 낳고, 자식 낳아서 기르고, 가끔 나한테 막 살기 힘들다고 한풀이도 하고 막 그렇게 사는 거, 그러고 싶었는데."
"걔랑 애슐리도 가고 싶었어요."
"애슐리에 애엄마들 많이 오니까, 애들 데리고 와서 애들은 걍 먹게 냅두고 우리는 우리끼리 맛있는 거 먹자."
"걔 결혼하면 제가 부케도 받고, 걔 옆에 서서 사진도 찍고, 막 가끔 집반찬도 같이 나눠먹고……."
"왜냐면 걔랑 저는 결혼을 못 하니까, 그렇게라도 같이 막……, 같이 늙고 싶었는데……."
"걔가 제 첫사랑이었어요."
"걔가 제 첫사랑이고, 뭐든지 처음이고, 걔가 제 전부고, 걔가 내 가족이고, 걔가 내 반쪽이고, 걔가 내……."
"걔가 내……."
"……."
나는 그 아이가 무혐의로 풀려난지 반 년 만에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망원인은 실혈로, 날카로운 흉기로 복부를 수십 번 찔러 자해했다고 한다. 왼손에 자신의 것이 아닌 새하얀 브래지어를 쥐고 사망한 것을 토대로 경찰이 타살여부 조사에 착수했지만, 이렇다 할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 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자살로 처리되었다.
나는 아주 늦은 밤 그 아이의 장례식장에 찾아갔다. 형광등이 깜빡이는 오래된 시골 장례식장에서, 그 아이의 어머니는 담배를 입에 물고 드러누워 있었다. 손님이라곤 나밖에 없는 그 썰렁한 장례식장에, 세월의 풍파가 여지없이 느껴지는 그 모습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져서 화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다 닳아빠진 가죽자켓과 언제 닦았는지도 모를 구두를 대충이나마 툭툭 털고 들어가서, 내가 몇 달 전 아이를 구치소에서 풀어줬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러자 그 아이의 어머니는 담배를 크게 한 입 빨고는, '댁이 누구인지는 관심없으니까 부조금 내놓고 절이나 한 번 하고 조용히 가시라'며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말했다.
나는 그 아이의 앞에 무릎꿇기 전에 생각했다. 아마 장례는 화장이겠지. 너는 불이 되고 싶다 했는데 너의 마지막 모습은 불이 되겠구나. 네가 다시 태어나서는 꼭 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모습이 설령 끔찍할 지라도, 물에도 바람에도 모래에도 꺼지지 않는, 그런 불로 네가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 아이의 영정 앞에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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