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체리(츠게님 리퀘)


 방학이다. 부실에서 쌉싸름한 풀내음이 났다.
 여름이 죽어가는 시간은 항상 이렇다. 월동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인터하이가 끝나자 나무는 죽음과 가까워졌다. 짜증과 눈물이 흘러내렸던 부실은 마치 모래처럼 빛났다. 
 금가루처럼 빛이 나는 추억은 눈이 부실수록 오히려 없느니만 못 해진다는 것을 나이를 먹고 깨달았다. 나는 인터하이 직후의 허무함을 떠올렸다. 모든 게 끝났는데 모든 게 끝나지 않았다. 숨통을 걸고 준비했던 관문은 그저 단순한 관문이었을 뿐. 실패를 했다고 내가 목매달아 자살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모든 일에 유종의 미를 거둬야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어도 모두가 필사적으로 합리화했다. 다만 내 실패의 목적을 찾기 위해, 의미없는 승리가 있을 수 있다면 의미있는 실패 또한 존재할 수 있는가 간단하게 생각했을 뿐.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깨와 폐부로 쏟아지는 질책은 내 아랫배 밑에 수은처럼 모여들었다. 우리 학교의 역사가, 왕자라더니, 오만떨다가, 그럴 줄 알았지 내가, 쟤넨 쓴 맛 좀 봐야 돼.

 나는 야스토모가 정확히 삼 년 전 내게 보인 얼굴을 떠올렸다. 가죽 뜯긴 표정, 자신의 꼬리를 잘라 구워먹는 표정, 기쁨에 익사한 표정. 침대에 누우면 야스토모의 목소리가 떠올랐고, 내 엄지를 빨며 헛구역질을 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났다. 차마 당장 정신을 놓을 수 없어 나의 집은 한동안 잠에 들지 못 했고, 나는 잠들지 못 하는 내 집 속의 내 침대에 태아처럼 누워 꿈 속을 헤엄쳤다.
 내 꿈의 야스토모는 야스토모가 아니었다. 그래서 꿈속의 그는 내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나는 내게 매달린 야스토모의 손을 쳐내며 고개를 돌렸고, 야스토모를 밀어낼 수 있는 내 자신에게 쾌감을 느꼈다. 내가 애써 그를 밀어내면 야스토모는 내 와이셔츠 속으로 손을 뻗었다가 내 귓볼을 마치 젖처럼 빨았다가 뜨거운 숨을 이기지 못 해 내 허벅지에 얼굴을 파묻으며 울었다. 신카이, 섹스하고 싶어. 너랑 섹스하게 해줘.
 내 꿈 속의 내 모습은 수치심도 몰랐다. 그래서 야스토모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려대면 그가 나를 과일처럼 깨물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야스토모의 입구멍에 내 손가락 두 개를 깊숙히 쑤셔 넣었고 야스토모, 빨아줘, 깨물어줘, 구역질해줘 꿈인 것을 알면서도 뻔뻔하게 속삭였다. 그러면 야스토모는 길쭉한 내 손톱을 성기처럼 물었다가 핥았다가 혀로 감싸쥔 채 목구멍 너머로 건너오는 구역질을 겨우겨우 넘기는 것이다.

 나는 내가 꿈을 꾸는 이유를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잠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꿈을 꾸고 싶어서 그랬고, 꿈을 꾸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방학이 다 끝나가던 여름날, 여름처럼 다 끝나가는 장맛비에, 눈물어린 습기와 비참했던 공기. 부실에서는 머리가 아프도록 나의 사춘기가 부어올랐다. 이래도 되는지, 앞으로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내 삶이 마치 부표를 실종한 바다같이 느껴져 차마 사람답게 울 수조차 없었던 어린 시절. 그 마지막 날 밤에 야스토모는 내게 이주 째 약을 먹지 않았다고 속삭였고, 나는 야스토모에게서 가루처럼 피어나는 꽃냄새를 맡았다. 내가 너 때문에 밥먹고 맨 입으로 양치질하고, 억제제 대신 좆같은 비타민 씨나 잔뜩 꺼내먹었는데, 너 나한테 뭐 해 줄 거 없냐?
 우리 둘은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 서로 좋아하던 사이도 아니었다. 단순히 함께 열쇠를 훔쳐다가 아무도 없는 부실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약속처럼 나란히 앉아있는 사이였다. 나와 야스토모가 함께 앉아있었던 그저 몇 십 시간, 야스토모가 나에게서 무엇을 느꼈는지는 몰랐다. 나는 다만 나 스스로의 비참함을 동정하기 위해 그의 옆에 앉았고, 그는 보답받은 자신의 삼 년이 안쓰러워 나의 옆에 앉았을 뿐이다. 그래도 야스토모는 거리낌없이 내 팔뚝에 어깨를 붙였다. 그러고서 내게 목소리를 비벼댔다.
 난 알파새끼들이 제일 싫어. 
 야스토모의 손이 내게 뻗어온다. 
 알파새끼들은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마치 끈끈이주걱처럼 징그럽게 벌려진 손가락이다. 하얗고 윤기나고 길쭉하고 끈적거리는, 사람의 것이 아닌 다섯 손가락.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내 양 손에 야스토모는 기어이 자신의 꽃술 아닌 꽃술을 가만히 집어넣고, 쇳덩이를 문 듯 이가 시린 아가리로 내 입술을 벌리고 들어왔다. 3학년 여름, 내 살아있는 밤을 인두처럼 지져버린 한 시간. 야, 신카이. 나 지금 너한테 강간당하고 싶어. 나는 그의 혓바닥이 내 마음을 핥는 것을 느꼈다.

 꿈 속의 야스토모는 나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을 한다. 나는 이미 정신이 나가버린 나를 보며 자위했고, 야스토모는 자위하는 나를 보고 자위했다. 꿈인데도 멀미가 나올 만큼 그의 날숨은 지독했다. 야스토모는 나를 양 허벅지로 감싼 채 숨 쉬지 못 해 울었고, 때때로 사정하며 끝없이 말꼬리를 늘려댔다. 히익, 힉, 신카이, 아, 나, 나 어떡해애. 흐으, 미칠 것 같아, 아파, 나 이러다 죽어, 아, 아, 죽여줘, 더 해줘, 아, 아, 너무 좋아, 아픈데 너무 좋아아. 야스토모, 야스토모, 어떡해, 나 어떡해야 돼, 응? 말해줘 나 어떡해야 돼, 나 어떻게 할까, 나 지금 너무 뜨거워…….
 나는 이미 미쳐있는데도 미칠 것 같다고 목을 젖히는 꿈 속의 야스토모를 봤다. 그리고 어찌할 바 몰라 허리를 웅크린 채 머리가 없는 것처럼 그에게 매달려 있는 내 모습을 보았다. 이대로 살아가느니 내가 차라리 나를 죽이는 게 낫겠다고, 나는 야스토모가 벌벌 떨며 발가락을 웅크렸다 벌리는 것을 두 눈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 첫 경험을 깨끗하게 청산해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깨끗했던 시절로 돌아간다거나 다시 순진한 척 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행위는 청산이기보다 되새김이고, 되새김보다는 나의 마음을 야스토모로 양각하는 것에 가깝다. 낙인인지 문신인지 모를 것이 내 마음에 달라붙어 그렇다고. 인터하이가 끝나버린 내 시간에 야스토모가 달팽이처럼 달라붙었다고. 사는 게 다 이런걸까?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준비해서 사람인 걸까. 나는 어디에선가 주워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 다 죽는 건데, 죽을 용기로 살라는 얘기는 좀 끔찍하지 않냐.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의 말을 떠올리며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어느새 와르르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맞아, 섹스하다 죽을 수도 있고, 어쩌다 뚝 떨어져 죽을 수도 있고. 사는 게 다 그런 건데. 그래서 결국 삼 년만에 학교로 돌아왔다. 휴학계는 내지 않았다. 추억을 훑는 것에는 몇 시간이면 족하다.
 천천히 교정을 걷다보니 여러 생각이 났다. 토돌이는 그 때만 해도 새끼였는데, 여기선 자주 넘어졌는데, 여기 그늘 밑이 시원했는데 말이지. 내 학생시절을 가만히 지켜봤던 나무는 여전히 파랬다. 그리고 흙냄새가 되려 묻힐 정도로 나무의 체향은 흉터처럼 진했다. 아, 눈물이 날 정도로 지독한 풀냄새.
 인터하이가 끝나버린 내 시간은 사람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야스토모 또한 그러했다. 우리가 했던 거, 섹스였을까? 우리가 짐승이었다면 차라리 교미라고 말을 할 수 있었을텐데. 번식을 위한 것도 아니고 서로 좋아서 한 것도 아니니 이건 성교도 아니고 교미도 아닌걸까? 나는 매일같이 꿈속에서 너와 함께 자위하면서도 아직도 내가 마냥 순결한 존재인 것만 같아.
 방학이다. 부실에선 여전히 쌉싸름한 풀내음이 났다. 그러나 나와 야스토모가 있었던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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