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머리를 한 남자. 키가 크고 말랐다. 양 눈은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무대 왼쪽에는 짧은 모양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한 가운데에는 작은 나무의자가 두 개 놓여져 있다. 의사 역할을 맡은 배우가 계단 가장자리에 올라 서 있다. 가벼운 옷차림과 슬리퍼, 하얀 의사가운. 그러나 직업의식이 투철한지는 않은지 곧 바른 자세 대신 껄렁껄렁한 모습으로 의사가운 주머니에 오른손을 집어 넣는다. 작은 조명이 그가 기대어 서 있는 계단을 비춘다. 계단의 끝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남자 : 소년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에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합니다.
남자 : 내가 어느 남자아이를 맡게 된 일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곧장 오해하는 부분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드리고 싶군요. 내가 그 소년처럼 조실부모했다던가,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내 유일한 피붙이라는 사실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굉장히 민감하고 불편한 이야기인 줄을 미리 알고 있습니다만은 혹 이 이후를 위하여 미리 이야기해두고 싶습니다. 그 소년을 맡을 때에, 나는 그 소년과 교감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공통점도 내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자, 왼쪽 계단 끄트머리에 앉아 품에서 수첩을 하나 꺼내든다.)
남자 : 그 소년은 형무소로 들어가기 전에 내 병원에 먼저 맡겨졌습니다. 나는 여기에 그 소년을 치료하며 내가 느낀 감정들을 기록했습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이고, 제 또래의 사람들보다 조금 어려보인다는 것 외에는 남들 눈에 특별할 것이 없었죠. 결단코, 맹세하건대, 저는 그 소년의 육체와 정신에 대해 아무런 사심이 없었고 또 지금도 없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기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의사, 계단에 앉아 수첩을 하나 꺼내들고 적는 시늉을 한다. 잘 나오지 않는 볼펜. 여러 번 직직 긋고 나서야 제대로 된 필기를 시작한다. 남자, 알 수 없는 필기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의사 : 모월 일 일, 안녕. 이름이 뭐야. 네가 이 병원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기억하니? 아무런 말도 반응도 없다. 열 여덟 살. 다섯 마리 말과 한 남자의 눈을 쇠꼬챙이로 찔러 죽임. 안녕, 이름이 뭐야, 네가 이 병원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기억하니? 라는 세 마디 말을 던진 것 외에 아무런 소득 없음.
의사 : 모월 사 일, 안녕, 오늘 기분이 어때. 병원 치고는 방이 괜찮지? 우리 못 본 사흘 동안 잠은 잘 잤니? 역시 아무런 말도 반응도 없다. (의사, 빠르게 덧붙인다. 소년의신상정보이름은한세건나이는열여덟살중학교에다니던도중일가족강도에게몰살친척집에맡겨졌지만유산분배문제로인한불화로인해가출이라고적혀있음,적혀있음,적혀있음.) 가출을 했다가 그 다음부터 어디에 머물렀니? 네가 붙잡힌 곳이, 어느 마굿간이라고 들었는데 맞니?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음. 모월 육 일, 모월 팔 일, 모월 십 일, 모월 십이 일, 모월 십사 일, 아무런 소득 없음, 아무런 소득 없음, 아무런 소득 없음, 아무런 소득 없음, 아무런 소득 없음.
(의사, 수첩을 소리내어 닫는다. 착! 하고 수첩이 닫히는 소리가 울린다. 의사는 아무런 말없이 관객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무대 중앙으로 나아간다. 터벅터벅, 하고 구두가 나무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좌측 계단 끝에서 의사와 비슷한 체구의 한 남자가 걸어나온다. 두 사람이 나란히 두 의자에 앉았지만 조명은 의사만을 비춘다. 가늘고 긴 눈의 의사. 머리가 검다. 의사 옆의 남자가 다리를 꼬면 의사는 관객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의사 : 나는 이미 내가 치료해야 할 소년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섯 마리의 말과 한 남자를 찌른 것이 바로 소년의 죄였지요.
(의사가 입을 다문다. 의사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꼬았던 다리를 푼다. 왼쪽 계단 뒤에서 환자복을 입은 소년이 천천히 걸어나온다. 조명이 꺼지고 발소리만 들린다. 발소리가 울려퍼지면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 자리에 환자복을 입은 소년이 앉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의자의 등받이에 양 손을 얹는다. 조명이 다시 의사를 비춘다. 소년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의사와 의자의 등받이에 올려진 남자의 손만이 조명에 비친다.)
의사 : 소년의 성장배경을 알아내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소년의 친척들은 병원에 찾아오지도 않았고, 또 소년은 입을 열지 않았지요. 경찰은 소년의 성장배경에는 큰 관심이 없었어요. 경찰에게 중요한 건 이 소년의 이름과 범죄행각, 현재 살고 있는 곳 뿐이었죠. 그러나 소년이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저는 소년에게서 큰 실마리 하나를 찾을 수 있게 되었지요. (의사, 수첩을 펼치고 수접에 고개를 박는다.) 그러니까, 그 소년은, 그러니까,
남자 : 매일같이.
의사 : 악몽을 꿨습니다. 아마 말에 관련된 악몽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년은, 제 추측이지만, 아마 항상 이렇게 잠꼬대를 해왔던 것 같았습니다. 소년의 잠꼬대는 굉장히, 아주 굉장히, 깊고 낮게 울렸지요. 소년은 약과 주사기운에 취해 깊은 잠에 빠지면, 항상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잠에 취한 목소리로…….
(조명이 의자의 등받이를 비춘다. 의자의 등받이를 잡고 있는 남자의 말 머리 모양의 가면이 보인다.)
의사, 남자 : 에쿠-우스.
(남자와 의사, 고개를 들고 조명, 꺼진다. 잠깐의 소요와 함께 조명이 다시 의사를 향한다.)
의사 : 잠깐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게는 형이 하나 있고, 아버지가 둘 있었죠. 어머니는 셋이 있었지만 동생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인간이었고 어머니도 인간이었는데, 형만이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필기하는 소리, 의사의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잠깐의 침묵.)
의사 : 단순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인 것이 아닙니다. 형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친형이었지만, 저는 저의 친형인 그에게서 인간적인 모습 그 어떠한 것도 느낄 수가 없었죠. 아버지는 항상 제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년 : 그 놈은 악마야.
의사 : 어느 날 드는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조실부모했지만, 아버지가 제게 했던 말들은 기억하고 있었죠. 하지만 과연 이것이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일이 맞는 걸까요? 태어나고 그 이후 삼 년 동안 부모가 했던 이야기들을 모두 기억하는 것이 과연 평범하고 일반적인 일이었을까요. 말하자면, 저는 커가면서 인간적인 것이 과연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오고 또 성찰했습니다. 그 놈은 악마야. 과연 이 말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아버지는 무슨 뜻을 가지고 제게 제 형이 악마라고 이야기를 한 것일까요. 아니, 과연 그 말을 정말 저의 아버지가 한 것이 맞을까요?
(조명, 꺼진다. 잠깐의 소요와 함께 조명이 소년을 비춘다. 의자의 등받이를 잡고 있는 남자의 손과 소년의 얼굴이 보인다. 하얗게 질려 있는 소년의 얼굴.)
의사 : 그래서 형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그 형이 죽었다고? 하는 의문 말이지요. 그리고 심지어 자연사, 병사, 사고사도 아니고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의문과 곧이어 굉장한, 정말 굉장한 환희를 느꼈습니다. 그 형이, 마치 악마와도 같았던 저의 형도 생명체였다는 것을 확인받은 것이었으니까요.
의사 : 그래서 저는, 소년을 더 깊게 파고 들어가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직후, 수소문을 하여 형을 죽인 소년을 찾아낸 것입니다. 바싹 마른 사내아이, 학대로 인해 불그죽죽하게 일어난 상처들이 온 몸 가득 남아있는 소년. 쇠꼬챙이로 형의 눈알을 파내고 그를 살해한 아이.
의사 : 소년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제게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저의 얼굴이, 눈을 제외한 그 모든 것이 형의 생김새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겠죠.
(의사, 자리에서 일어난다. 의사가 비운 의자에 말의 머리뼈 모양을 한 가면을 쓴 남자가 앉는다. 말과 같은 행동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년이 두 다리를 의자에 올려 웅크리면 의사는 서서히 무대를 걷는다. 소년, 홀로 조명을 받는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며 소년은 소년과 의사, 일인 이역을 시작한다.)
소년 : 네가 누굴 죽였는지 기억하니?"
소년 : …….
소년 : 나는, 사실 말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야. 하물며 내 말도 아닌 남의 말 몇 마리가 죽는 것 따위 내 알 바 아니지.
소년 : …….
소년 : 그래도 네가 저지른 일에 대해 내가 묻는 이유는, 네가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야.
소년 : 그 새낀 사람이 아니었어.
소년 : 그래, 인간은 아니었지.
(소년, 잠시 침묵한다. 의사는 여전히 무대를 걷는다.)
소년 : 내 얼굴을 처음 본 날 기억해?
소년 : 사월 이일.
소년 : 잘 기억하고 있네.
소년 : …….
소년 : 네 생일이었지.
(소년, 허벅지를 꼬집으며 자해한다.)
소년 : 저런.
(의사, 소년의 앞에 꿇어앉는다.)
소년 : 세건아.
소년 : …….
소년 : 네가 죽인 사람은 내 친형이야.
소년 : …….
소년 : 물론 너를 탓할 생각은 없어.
소년 : 네가 죽이지 않았다면 내가 죽였을 테니까.
소년 : …….
소년 : (속삭이며)이건 비밀인데.
소년 : 사실 나도 인간은 아니란다.
소년 : …….
소년 : 나는 너를 치료하거나, 너를 낫게 하거나, 네게 무언가 병이 있다고 진찰하기 위해 너를 이 곳으로 데려온 게 아니라.
소년 : 내가 세상에서 제일 증오한 우리 형이
소년 : 너와 어떤 관계였길래 너에게 죽어주기까지 했는지 그게 궁금해서
소년 : 너를 이 곳으로 데려온 거야.
소년 : 나도 사실, 매일같이, 내 형의 눈알을 찌르고, 누르고, 터뜨리고, 후벼파는
소년 : 그런 꿈을 꿔왔거든.
(의사,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년, 의자에 올렸던 두 다리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인다. 조명이 모두 꺼진다.)
(잠깐의 소요. 모든 소품이 사라지고 의자 하나만이 무대 위에 남아있는다. 소년, 제자리에서 주섬주섬 옷을 벗고 속옷 바람으로 의자에 앉는다. 의사, 무대 오른쪽 구석에서 질문을 시작한다. 조명은 소년을 향한다. 상처가 마구 나 있는 몸. 의사는 친절한 목소리로 질문을 시작한다. 무표정한 소년의 얼굴.)
의사 : 말을 좋아하니?
소년 : 별로.
의사 : 그럼 마굿간에서는 왜 살았던 거야?
소년 : 그가 거기 있었어.
의사 : 누구?
소년 : (신경질적으로)알잖아!
의사 : 그래, 그렇다고 하자.
소년 : …….
의사 : 말을 좋아하니?
소년 : 안 좋아해.
의사 : 그럼, 마굿간에서 언제부터 살게 됐니?
소년 : 2년 전.
의사 : 그 때도 그가 마굿간에 있었니?
소년 : 응.
의사 : 그를 처음 만났던 건 어디에서야?
소년 : 마굿간에, 옆에, 들판에서.
소년 : 그는 뭘 하고 있었어.
의사 : 무엇을?
소년 : …….
의사 : 말해봐. 무엇을?
소년 : (조용히)강간.
의사 : 누구를?
소년 : 어떤 여자를.
의사 : …….
소년 : 그리고 바로 또 나를 강간했어.
의사 : 아팠겠구나.
소년 : 아프진 않았어.
의사 : 괴로웠니?
소년 : 괴롭지도 않았어.
의사 : 그래……. 그가 너를 강간하는 동안 네게 무슨 말이라도 했니?
소년 : 세건아.
의사 : 세건아.
소년 : 드디어 만났구나.
의사 : 드디어 만났구나.
소년 : 내 사랑.
의사 : 내 사랑.
의사 : …….
의사 : 그는 마굿간에 살고 있었니?
소년 : 응.
의사 : 그는 말을 관리하는 관리인이었니?
소년 : 아니.
의사 : 관리인은 따로 있었니?
소년 : 응.
의사 : 관리인은 지금 어디 있어?
소년 : 죽었어.
의사 : 왜?
소년 : 들판에서 강간당했던 여자가 그 사람이었어.
의사 : 그래. 그에게 강간당하고, 너는 마굿간으로 끌려간 거구나.
소년 : 아니, 끌려간 게 아니야.
의사 : 그러면?
소년 : 내가 내 발로 그를 쫓아갔어.
의사 : 왜?
소년 :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
(잠시의 침묵.)
의사 : 잠시 쉬었다 할래?
소년 : 아니.
의사 : (고개를 끄덕이고) 마저 이야기하자.
의사 : 마굿간에서 이 년 동안 무슨 일을 했지?
소년 : 말을 관리했어.
의사 : 그 여자 대신 네가 말을 관리하게 된 거구나.
소년 : 그래.
의사 : 그가 몇 번이나 너를 찾아왔니?
소년 : 일주일에 한 번.
의사 : 그가 찾아올 때마다 그에게 강간당했니?
소년 : 아니.
의사 : 그러면?
소년 : 의식, 의식을 했어.
의사 : 의식이라……. 어떤 의식 말이지?
소년 : 말의 피를 마셨어.
의사 : 누구의?
소년 : 몰라. 어떤 이름 모를 사람의 말. 암컷일 때도 있고, 수컷일 때도 있었어. 하나같이 살아있었어.
의사 :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를 때렸니?
소년 : 응
의사 : 괴로웠니?
소년 : 응
의사 : 어떤 점이?
소년 : 그가 나를 때린다는 점이.
의사 :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자. 마굿간에 있는 말들은, 모두 그의 소유였니?
소년 : 아니.
의사 : 그러면?
소년 : 그 사람은 말들을 싫어했어. 그냥 동물을 싫어했었어. 틈만 나면 말을 죽이고, 그 자리에 새로운 말을 데려왔지.
소년 : 아니,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말을 죽여서 내게 먹이고, 그 자리에 새로운 말을 데려왔어. 나는 새로운 말들이 들어오면 말들을 묶어두고, 씻겨주고, 먹이를 줬어. 아침저녁으로.
의사 : 하루에 두 번씩?
소년 : 응
의사 : 그랬구나.
소년 : 그는, 자기가 만났던 사람 중에 자기가 죽이지 않은 사람은 나 뿐이라고 했어.
소년 : 그는 항상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라고 했어.
소년 : 새 말들이 들어오면 나는 말들을 씻기고, 묶어뒀어.
소년 : 가장 건강한 말들은 항상 주말에 죽었어.
소년 : 나는 매일 주말 한 마리씩 말들을 죽여야 했어. 목을 따고, 그 피를 받아서, 그가 보는 앞에서 그걸 마셨어.
소년 : 그럼 그가 나를 칭찬해줬어.
소년 : 착하다.
소년 : 세건아.
소년 : 그렇게 내가 피를 잘 마시면 나를 칭찬해주고, 나를 강간해줬어.
(소년, 몸을 웅크린다.)
소년 : 나는 이 년 동안 매일같이 주말을 기다렸어.
소년 : 나는 그에게 내가 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소년 : 그에게 칭찬받고 싶었고, 그에게 강간당하고 싶었어.
소년 : 미쳐버릴 것만 같았어.
소년 :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아무도 나를 알지 못 하는데, 그만 나를 알고 있었어.
소년 : 토요일이 되면 나는 그가 오기를 기다렸고, 그 날 밤 어떤 말의 모가지에 칼을 쑤셔 박을지 고민해야만 했어.
소년 : 비리고 뜨겁고 역겨운 피를 마시면 그가 나를 칭찬해줬어.
소년 : 그럼 나는 그게 너무 기뻤어.
소년 : 기쁘고, 황홀했어.
소년 : 그게 정상이 아니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는데, 벗어날 수가 없었어.
소년 : 매일 주말 말을 죽이고, 말을 먹었으면서, 날이 밝으면 마굿간 근처의 땅을 파다가 말의 무덤을 만들어줬어.
소년 : 깊게 묻지 않으면 시체 썩는 냄새가 고약하게 났어.
소년 : 나는 일주일 내내 깊게 땅을 팠고, 일주일의 끝이 되면 말을 먹고, 다시 또 새로운 주가 찾아오면 말을 묻고, 땅을 팠어.
소년 : 나는 점점 더 멀리 말의 무덤들을 만들었어.
소년 : 그가 새로운 말들을 데려올 때마다 나는 더 많은 무덤을 만들어야 했어.
의사 : 매일같이 악몽을 꾸는 모양이던데, 무슨 꿈인지 설명해줄 수 있니?
소년 : 내가 악몽을 꾼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의사 : 몰래 엿들은 건 아니야. 네가 항상 큰 소리로 외쳤지.
소년 : 에쿠--우스.
의사 : 하고.
소년 : …….
의사 : 알고 있구나 너도. 네 잠버릇을.
의사 : 그게 어떤 뜻인지 알려줄 수 있니?
소년 : …….
소년 : 그가 알려준 주문이야.
소년 : 내가 피를 마실 때마다 내게 말했어.
의사 : 어떤 주문이지?
소년 : 프린스.
소년 : (홀린듯이) 프린스, 프랑스를 낳았다. 프랑스 프랑스크를 낳고, 프랑스크 플랑커스를 낳고, 프랑커스 스팡커스를 낳고, 스팡커스 스펑커스 대왕을 낳아, 대왕은 예순살까지 살았도다. 레그우스 네크우스를 낳고, 네크우스 힘의 왕인 플에크우스를 낳았고, 플레크우스 칭클 챵클을…….
의사 : 그가 그렇게 이야기 했다고?
소년 : (홀린듯이)응.
소년 : (홀린듯이)그리고 나를 때렸어.
소년 : (홀린듯이)피를 들고 있는 나를 때렸어.
소년 : (홀린듯이)그러면 나는 그에게 얻어맞으면서 피를 마셨어.
소년 : (홀린듯이)비리고, 뜨거워. 구역질이 나.
소년 : 내가 피를 모두 마시면 그는 나를 끌어안고 이렇게 이야기해줬어.
소년 : (속삭이듯이)나의 오직 하나뿐인 에쿠우스.